Q. '결초보은'의 유래와 시대적 배경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춘추시대 진나라 군주 위무자에게 애첩이 있었는데 어느날 병석에 눕게 된 위무자는 아들 위과를 불러 자신이 죽으면 애첩을 재가시키라 말합니다. 그러나 위독해진 위무자는 자신이 죽으면 애첩도 함께 묻으라 유언을 남기고 사망,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남기신 전혀 다른 두 유언 사이에 고민하던 위과는 애첩을 순장하는 대신 다른 곳에 시집보내며 난 아버니께서 맑은 정신에 남기신 말씀을 따르겠다 라 합니다.한편 세월이 흐른 후 이웃 진(秦)나라에서 진(晉)나라를 침략했을 때 한 전투에서 위과가 진(秦)나라 군사를 격파하고 적장 두회의 뒤를 쫓아갈 무렵, 갑자기 무덤 위의 풀이 묶여 올가미를 만들어 두회의 발목이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날 밤 한 노인이 위과의 꿈에 나타나 나는 네가 시집보낸 아이의 아버지다, 오늘 풀을 묶어 네가 보여 준 은혜에 보답한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Q. '금입택'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수도인 경주에 있던 귀족들의 대주택으로 금을 입힌 집 , 금이 들어간 집 입니다.금입택은 신라 통일 후 지방에 광대한 전장을 소유하고 많은 노비와 사병을 거느린 귀족들의 막대한 재력과 호사스러운 생활을 반영합니다귀족들은 화려한 주택을 지어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 이는 귀족들이 골품제의 원리에 따라 상대등, 시중, 병부령, 장군직을 독점하고 국가로부터 식읍, 녹읍을 받으며 토일 전쟁의 군공에 따라 막대한 포상과 전리품을 분배받음으로 이룩한 경제적 기반 위에서 가능한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