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고려시대에 문관들과 무관들은 사회적 차별이 존재하였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무신정변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고려 귀족사회의 모순에서 찾을수있는데 고려 귀족 사회는 귀족들이 정치적 권력을 독점하고 대토지를 겸병하는 등 경제적 실권을 장악하는 가운데 이를 둘러싼 지배층 내부의 항쟁이 야기되어 차츰 동요되어갔습니다.문벌귀족들의 지배체제는 왕권과 결탁하려는 지방향리출신 신진관료의 성장을 제약했고 이는 다시 무반에 대한 차별로 연결되었습니다.고려의 문, 무반은 같은 양반관리로 단일 관계체계안에 일원적으로 편성되어 법제적으로는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되어있으나 실제 문반만이 귀족이 되어 정치권력을 독차지하고 군대를 지휘, 통수하는 병마권까지 장악하는 반면 무반은 귀족정권을 보호하는 호위병의 지위로 떨어져있었으며 일반 군인들은 전쟁시, 평소에도 공역에 동원되는 등 고역에 시달리며 전시과 체제의 문란으로 군인전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렸습니다.
Q.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기록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913년 5월 13일 안창호 등에 의해 흥사단이 재건됩니다. 부활한 흥사단의 멤버로는 안창호, 윤치호, 이광수, 장이욱, 주요한, 주요섭, 김동원, 조병옥, 안병욱 등이며 흥사단원들은 안악사건, 3.1운동. 수양동우회 사건 등에 직, 간접적으로 관여해 독립운동에 기여했습니다.미국내 한인 교민들의 사회 활동, 권익 보호, 언론 활동, 교민 사회 단결과 사회 활동을 적극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Q. 르네상스는 왜 이탈리아에서 먼저 시작 된건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서아시아 지역에는 이 곳을 지배하고 있던 대표적인 거대한 제국으로 동로마 제국이 있었으며 이는 비잔티움 제국이라고도 합니다.동로마 제국이 사실상 동양과 서양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해주고 있는 제일 중간에 위치한 지역이었는데 동로마 제국의 오른쪽에 이슬람 세력이었던 오스만 제국이 있습니다.오스만 제국이 15세기 중반 무렵 동로마 제국을 공격해 동로마 제국이 멸망, 동로마 제국은 말 그대로 로마 제국입니다. 이 동로마 제국이 위치한 곳이 그리스 반도에 위치했기 때문에 동로마 제국은 천년동안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유산을 아주 잘 간직하고 있던 국가였습니다. 그런데 이슬람 세력이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는 과정에서 수많은 동로마 제국의 학자, 부유한 사람들은 찬란했던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문화유산을 간직하며 피난을 가는데 그 장소가 이탈리아였습니다.비잔티움 제국의 학자들이 이탈리아로 대거 망명하고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유산의 돌아가자의 의미를 지닌 르네상스답게 이탈리아는 비잔티움의 제국의 수많은 학자들이 이탈리아로 망명했기 때문에 그들이 가지고 있던 고대 문화유산을 이탈리아 인들은 일찍부터 접할수 있었습니다.또 십자군 전쟁 이후 도시와 상업이 발전하며 돈이 많아지게 되고 문화에 대한 욕구가 생겼으며 , 이탈리아 반도로부터 로마 제국의 뿌리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탈리아에서는 로마 제국의 문화를 잘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Q. 음악가 홍난파 선생이 친일행적이 있다던데 사실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937년 미국 유학 중 흥사단에 가입한 일로 수양동우회 사건에 연루되어 검거, 72일간 혹독한 고문을 받으면서 전향 협박을 받게 됩니다. 결국 건강악화 끝에 그는 공개적으로 전향서를 쓰고 기소유예로 풀려나게 되며 이듬해 6월 18일 홍난파는 직전에 기소유예로 풀려났던 이묘묵을 비롯해 정영도, 김여제, 김여식, 전영택, 류형기, 이명혁, 박태화, 차상달, 하경덕, 갈홍기, 현제명 등 12인의 흥사단원과 김기승, 김노겸, 노진설, 이기윤, 최봉칙 등 5인의 동우회원 등 17인과 함께 공식적으로 전향성명서를 발표하고 친일단체 대동민우회 가입, 8월 18일 위 사람들과 함께 흥사단에서 출단 처분을 받았습니다.모리카와 준으로 창씨개명하고 일제에 아첨하는 음악을 여럿 작곡, 1941년 1월 11일 친일단체 조선음악협회의 결성대회에서 평의원에 선출, 1월 29일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부 위원에 선임되었습니다.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 보수적인 양악계에서는 친일을 하지 않았으면 작품활동은 물론 생계를 이어나갈 수 없었다며 옹호론을 펼치나 이에 대해 생활고와 각종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일제에 대한 저항 정신을 굽히지 않은 예술가들을 반례로 들며 반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