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조선에서 왕들의 어진을 그린것이 왜 남아있지않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 어진은 개국 초부터 꾸준히 제작되었으며 실록에도 태조 이후 역대 왕과 왕후의 어진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인종의 경우 생전에 어진을 그리지 말라 지시했고, 그 지침으로 사후에도 어진을 제작하지 않았습니다.임진왜란 때 궁궐이 타면서 태조 어진, 문종 어진, 세조 어진 , 덕종 어진만 남았다고 전해지나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한양 수복 전후로 태종과 세종 어진에 관한 얘기가 나옵니다.당시 태종의 어진은 굉장히 낡고 삭아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었다고 전해지며 세종대왕 어진은 강화에서 옮겨와 봉안했다는 기록만 있고, 인조 대의 기록에서 형태를 분간하기 어려운 선왕들의 어진을 강화도로 옮길 것인이 논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아 병자호란때 기타 다른 왕들의 어진들과 함께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큽니다.왜란 후 임금들은 나라가 혼란스러워인지 몰라도 어진을 남기지 않았는데 선조는 어진을 그리기 싫다며 거부, 인조 , 효종, 현종, 경종은 어진을 그렸다는 기록이 없어 이들도 어진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Q. 일본 훗카이도 조난사건에 대해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989년 7월 24일 일본 홋카이도 다이세쓰산 아사히다케에서 일어난 의문의 조난 사건입니다.1989년 7월 24일 오후 , 다이세쓰 산에서 구로다케 산으로 가다가 행방불명된 등산객을 수색하고 있던 홋카이도 경찰의 헬리콥터가 등산 루트에서 벗어난 주베쓰 강 원류부에서 쓰러진 나무를 쌓아 만든 SOS문자를 발견, 당초 수색 중이던 등산객은 거기서 북쪽으로 2,3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무사히 구조되었지만 SOS문자는 아는 바가 없다고 했습니다.다른 조난자가 있을 것이라 판단한 경찰은 다음날 다시 헬기를 파견해 조사를 진행, 그 결과 동물에게 물린 자국이 있는 인골 파편과 SOS라고 외치는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녹음된 카세트 테이프 레코더를 찾아냈습니다.실종자 명단이나 유류품을 살펴본 결과 1984년 경 조난된 남성이라고 특징되었지만 인골은 여성의 것으로 판정, 현재까지 미제로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