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신라삼최에는 누가 들어가고 이들의 업적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신라삼최는 신라 말기와 후삼국시대에 문신으로 이름을 떨친 세 명의 최씨로 신라의 최치원, 후백제 최승우, 고려 최언위를 말합니다.최치원의 경우 당시의 사회적 현실과 자신의 정치적 이상과의 사이에서 빚어지는 심각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인간 본원에 바탕을 둔 사상과 진리의 보편타당성을 추구함으로써 해결책을 제시했는데 유교, 불교, 도교의 제사상을 상호 융합시켜 혼돈된 사회의 인간제와를 위한 이념으로 삼고자했습니다.최승우는 수많은 고사와 경전의 어구들을 빌어 강한 어조로 후백제 정권의 정당성을 설파하며 후삼국의 형세 속에 왕건의 천운이 다했음을 주장했습니다.최언위는 신라에 있던 시절부터 고려에 벼슬하던 시절까지 많은 승려들의 비문을 작성했습니다.
Q. 1.21 무장공비 침투사건에 대해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21사태는 김일성의 명령으로 1968년 1월 21일 북한 124부대 소속 무장군인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해 대통령 박정희를 제거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으로 당시 유일하게 생포된 김신조의 이름을 따 김신조 사건이라고도 합니다.1월 17일 밤 휴전선을 넘은 무장공비들은 21일 밤 9시 30분 경 서울 청운동 세검정 부근, 청와대 앞 500미터까지 진출, 창의문 근처에서 있던 경찰의 불시검문에 불응하며 총격전이 벌어졌고 무장공비들이 도주하기 시작합니다.이들을 잡기 위해 비상경계태세가 내려진 가운데 군경합동 소탕작전을 벌인 결과 31명 중 29명이 사살, 1명은 북으로 도주, 1명이 생포됩니다.그 와중에 민간인을 포함해 30명이 사망, 52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 사건의 결과로 향토예비군, 육군3사관학교, 전투경찰대, 684부대가 창설,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는 교련 교육이 실기되었으며 대통령 경호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인왕산과 북악산, 청와대 앞길까지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되었습니다.북한은 사건 관련성을 전면 부인했으나 생포된 김신조는 방송 인터뷰에서 박정희의 모가지를 따러 왔다 고 말해 국민들을 놀라게했으며 중앙정보부는 복수를 위해 특수부대인 684부대를 창설하나 계획이 취소되어 무관심속에 부대원들을 방치했는데 그 결과 실미도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