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삼국시대의 오두미교는 후대까지 어떻게 살아남았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조가 오두미도의 전파를 용인했으므로 오두미도는 끊기지 않고 계속 전파될수있었고 장로의 아들 장성이 본산을 용호산으로 옮긴 이래로 천사도라 불렸습니다. 그때부터 대제주와 제주들이 독립해 분파하기 시작했다고 하며, 이후 남북조시대에 들어 구겸지가 북천사도와 육수정이 남천사도로 세우면서 분파되고 천사도를 지식인들 계층까지 받아들이게 됩니다.수, 당을 거치며 이를 합치고 또한 도교의 상청파, 영보파, 정명파 등을 합쳐 정일교라 부르게 됩니다.
Q. 일제강점기 문학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한 분들은 누가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일제강점기의 작가로는 윤동주, 이상화, 조지훈, 백석, 정지용, 박목월, 이육사, 김광섭, 김소월 등이 있습니다.
Q.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이 사이가 안좋았다고 하던데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흥선대원군은 외척 세력에 의한 세도정치를 일소하고자 고종의 비를 들일때 일부러 쇠락한 양반 집안의 민씨를 택합니다.이들의 사이가 멀어진 것은 고종의 서장자였던 완화군 문제인데, 완화군은 고종이 궁궐에 들어와 처음 사랑에 빠진 궁녀, 영빈 이씨의 아들로 영빈 이씨가 정비가 아니었으므로 완화군 역시 서자였고 명성황후 입궐 후 영빈 이씨와 명성황후는 경쟁관계가 되므로 자연히 완화군의 자리가 묘해집니다.완화군은 서자지만 고종의 큰 아들이었으므로 흥선대원군은 그를 총애해 그를 세자로 삼으려는 마음을 드러내 명성황후와 사이가 틀어질수밖에 없었습니다.고종이 성장하고 명성황후와의 사이가 나빠지며 흥선대원군은 하야의 압력을 받고,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고종의 마음을 움직인 것도 명성황후, 마침 최익현을 비롯한 대신들이 흥선대원군의 하야를 주장하는 상소를 올리면서 흥선대원군이 하야하게 됩니다.흥선대원군은 재집권을 엿보았는데 1881년 조선책략이 유포되었을 때 영남의 유생들이 만인소를 올리며 거세게 위정척사 운동을 벌였을 때 자신의 서장자였던 이재선을 옹립하는 움직임에도 연이 닿았고, 임오군란이 일어났을 때 반란군들이 흥선대원군을 옹립하려하자 이를 수락해 잠시 집권하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명성황후의 요청으로 청나가 군대가 개입하여 반란이 진압되자 흥선대원군은 청나라에 인질로 가게 됩니다. 이렇듯 이 둘의 대립관계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