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실종 미제 사건인 개구리소년 사건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개구리 소년 사건은 1991년 대구에 거주하는 5명의 초등학생이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섰다가 실종, 11년 6개월만인 2002년 9월 유골로 발견된 사건을 말합니다.1991년 3월 26일 당시 대구성서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우철원 군을 비롯한 조호연, 김영규, 박찬인, 김종식 등 다섯 어린이가 집 뒷편인 대구시 달서구 이곡동 와룡산에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나갔는데 아이들이 실종된 날은 5.16군사쿠데타 이후 중단되었던 지방자치제가 30년만에 부활해 기초의원을 선출하던 투표가 있던 날 입니다.임시공휴일인 이유로 학교에 가지 않았던 어린이들은 와룡산에 오르기 전 인근 마을에 사는 학교 친구와 마을주민들에게 목격된 것을 마지막으로 찾을수 없었는데, 아이들이 실종되자 부모들은 생업을 포기하고 전국을 헤맸고, 개구리소년들을 주제로 한 영화와 노래가 제작, 전국 초등학교생들은 대구 개구리친구 찾기 운동을 펼치는 등 전 국가적인 사건으로 떠올랐습니다.경찰은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대구지방경찰청 차장을 본부장으로 한 수사본부를 구성, 와룡산 일대는 물론 전국을 수색했는데 전국 새마을중앙회 등 각종 사회단체들은 700여 만 장의 전단을 전국에 뿌렸고 한국담배인삼공사와 기업체들도 담배갑과 상품에 실종 어린이들 사진을 인쇄, 수색 작업에 동참하나 대통령의 특별지시와 현상금 4200만원, 단일 사건으로는 최대 규모인 연인원 35만 명의 수사인력이 투입됨에도 이들의 행적을 찾지 못했습니다.실종 5년 째인 1996년 1월 다섯 어린이 중 한명이 자신의 집에 암매장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돼 굴착기와 곡괭이 등으로 수색했으나 흔적이 없었습니다. 개구리소년들의 실종이 장기화 되자 한때 외계인 납치설, 북한공작원 유괴설, 불치병 치료용 희생설 등의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실종 11년 6개월 만인 2002년 9월 26일 4구의 유골과 신발 5켤레가 대구시 달서구 용산동 성산고교 신축공사장 뒷편 500m떨어진 와룡산 중턱에서 발견되는데 당시 경찰은 아이들이 길을 잃고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는 반면, 부검을 맡은 법의학팀은 감정 결과 명백한 타살로 결론냅니다. 그러나 이후 수사는 진척이 없었고 범인은 결국 밝혀지지 않았습니다.이때까지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는 15년으로 되어 있어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은 2006년 3월 25일 공소시효가 만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