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학생인권조례가 뭐길례 학부모와 교사단체는 폐지를 요구하나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례안의 가장 큰 문제는 교사의 ‘즉각적인’ 징계권, 생활지도권을 박탈했다는 것으로 꼽힌다. 교실에서 학생이 대놓고 잠을 자거나 큰소리를 내 수업방해를 하거나 폭력 행사를 해도 교사는 그 자리에서 바로 벌을 줄 수 없다. 학생인권 보호 차원에서다. 6곳의 조례안 모두 같은 내용으로 ‘학생의 징계 절차에서의 권리’를 명시하고 있는데, “학생에 대한 징계는 징계사유에 대한 사전 통지, 공정한 심의기구의 구성, 소명기회의 보장, 대리인 선임권 보장, 재심요청권의 보장 등 인권 기준에 부합하는 정당한 규정과 적법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되어 있다. 사실상 문제학생을 말로 타이르고 설득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셈이다. 이 때문에 자는 학생을 흔들어 깨운 교사를 아동학대 및 성추행으로 신고한 사례도 교총에 접수된 바 있다.
Q. 우리 나라 한옥의 특징은 무엇이있나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한옥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목구조이며 자연재료를 사용합니다.한옥의 구조방식은 나무를 연결하는 목구조입니다. 한옥은 기단,기둥과 벽, 지붕으로 구성됩니다. 먼저 흙 위에 습기를 막기 위해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를 흙벽으로 채우는 형식입니다. 기둥 위에 보를 얹고 지붕틀을 만드는 서까래를 얹고 지붕을 만듭니다.- 내부에 온돌과 마루가 있습니다.한옥은 대지 안에 여러 채(건물을 세는 단위)로 구성되고, 각 채는 취사와 난방을 하는 부엌과 온돌 · 마루로 거주공간을 구성합니다. 겨울에 바닥을 따뜻하게 하여 좌식생활에 좋은 온돌과,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지내기 위한 마루는 기후에 적응하기 위한 우리조상의 훌륭한 지혜의 산물입니다.- 유교의 영향이 반영되어 남녀, 신분에 따라 공간이 구분됩니다. 조선시대는 신분제 사회이므로 양반과 서민의 집이 규모와 장식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조선시대 유교의 영향이 반영되어 여성이 생활하는 안채와 남성이 생활하는 사랑채가 있습니다. 신분의 상하구분이 있어서 하인은 행랑채에서 생활합니다.-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 있습니다.사랑채에 가깝게 집의 동쪽이나 안쪽에 사당을 만들고 4대까지의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냅니다.
Q. 구텐베르크의 인쇄술과 고려의 인쇄술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금속활자란 ‘문자나 기호를 네모 형태로 이루어진 각각의 금속 조각 윗면을 양각, 즉 볼록 튀어나오도록 주물로 만든 것’을 말한다. 금속활자는 목판활자에 비해 경도와 내마모성이 뛰어나야 하고, 낮은 변형률과 비수축성도 월등해야 한다.이 같은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구텐베르크는 수 없이 많은 실험을 통해 납(Pb)과 주석(Sn), 그리고 안티모니(Sb)의 합금으로 금속활자를 만들었다. 그가 만든 구성비는 납 60~70%, 주석 10~20%, 안티모니 20~30%였는데, 오늘날 일반적인 활자 합금비율이 납 80%, 주석 3%, 안티모니 17%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의 뛰어난 구성비를 자랑한다.오늘날의 학자들은 금속세공사에 불과했던 구텐베르크가 어떻게 이처럼 뛰어난 주물 기술을 익혔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한다. 혹시 누구에게 전수받은 것은 아닐까? 이 같은 의문에 대해 단서를 제공한 사람이 있다. 바로 미국의 전 부통령인 앨 고어(Al Gore)다.그는 지난 2005년 국내에서 열린 행사에 기조연설자로 참석하여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기술이 고려를 다녀간 교황사절단을 거쳐 전파된 기술”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얼마 뒤 스위스의 인쇄박물관도 고어 전 부통령의 발언을 뒷받침하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여 화제를 모았다.독일의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서양의 교황 사절단이 고려를 방문한 뒤 얻어 온 기술이라는 것. 사절단이 고려를 방문하고 돌아올 때 금속활자의 그림과 설명도 같이 갖고 왔는데, 구텐베르크가 그들로부터 금속활자에 정보를 얻었음이 확실하다는 내용이었다.이 같은 내용이 아직 학계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상당히 파격적인 주장임에는 틀림없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고려의 금속활자를 모방한 것이라는 주장까지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