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청나라 황제가 청나라가 망한 되에도 황제에 있을 수 있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마지막 황제인 부의(溥儀)는 청조 멸망 이후에도 중화민국 정부와 체결한 "청실 우대 조건"에 따라 자금성에 잔류하였는데(청나라 소조정),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1. 대청 황제는 물러난 이후, 「존호는 계속 유지되며, 폐지되지 아니한다」. 중화민국은 대청 황제를 "외국 군주를 대하는 예"로 우대한다.2. 대청 황제는 물러난 이후, 세금 사백만 냥을 사용하며, 이후 신 화폐가 주조되면 사백만 원이 중화민국에 의해 지급된다.3. 대청 황제는 물러난 이후, 자금성에 잠정적으로 계속 거주하며, 이후 이화원으로 옮기게 된다. 시위(侍衛)하는 사람 등은 계속 쓸 수 있다 4. 대청 황제는 물러난 이후, 그 종묘와 능침에 대해 영구히 제사를 받들며, 중화민국은 적절히 호위하는 병사를 두어 그것을 신중히 보호한다.5. 덕종(광서제)의 능이 아직 완성이 안 되었으므로, 제도에 맞게 수리하며 옛 예법에 맞게 한다. 그 경비는 중화민국이 지출한다. 6. 궁중에서 고용하는 집사 인원은 계속 유지되나, 이후에는 환관은 더 고용할 수 없다.7. 대청 황제는 물러난 이후, 지금 가지고 있는 자산은 중화민국이 특별 보호한다.8. 현재 보유한 금위군은 중화민국 육군부에 편제되며, 그 수 및 녹봉은 예전과 같이 한다.1. 청나라 왕공 작위는 예전과 같이 유지된다.2. 청 황족은 중화민국 국가의 공권과 사권에 대해서는 보통 국민과 같다.3. 청 황족의 사유 재산 일체는 보호된다.4. 청 황족은 병역의 의무가 면제된다.(만몽회장 각족 대우 조건은 생략)이 조건으로 푸이는 자금성 안에서는 청 황제로서 행세할 수 있었고, 자금성 내에서는 계속 선통 연호가(음력과 함께) 쓰였다.
Q. 돌궐족의 무한카간은 어떤 인물이었나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무한(Mukhan)카간(553-572)은 돌궐의 최고 전성시대를 열었는데, 돌궐비문은 그에 대해“사방에 군대를 보내 모든 종족을 복속시키고, 머리를 가진 자는 머리를 숙이게 하고, 무릎을 가진 자는 무릎을 꿇게 하였다”라고 기록할 정도로 위세를 떨쳤다. 그의 장례식에는 중국, 티베트, 비잔틴, 유연, 거란, 고구려 등에서 사신이 왔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Q. 파리의 예술가 알폰스 무하라는 화가는 어떤 인물인가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알폰스 무하 Alphonse Mucha(1860-1939)는 체코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장식 미술가이며 '무하 스타일' 또는 '르 스틸 뮈샤'라고 불리는 선형적이고 장식적인 문양과 미묘한 색감으로 그려낸 여성묘사 화풍은 '아르누보' 양식의 동의어로 여겨진다. 짧지만 찬란했던 '아르누보' 시대(1890-1910)의 정수로 평가되는 무하의 작품들 중 포스터, 패키지 디자인 그리고 장식 패널들은 실용적이고 상업적인 예술의 장르를 순수예술로 승화시켰다. 대표작으로는 지스몽다 Gismonda(1894), 사계 The Seasons(1900), 보석 The Precious Stones(1900)등이 있다.
Q. 조선왕조실록이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왕조실록의 기초자료 작성에서 실제 편술까지의 편수 간행작업을 직접하였던 사관은 관직으로서의 독립성과 기술에 대한 비밀성을 제도적으로 보장받았다. 실록의 편찬은 다음 국왕 즉위한 후 실록청을 개설하고 관계관을 배치하여 편찬하였으며 사초는 군주라해도 함부로 열람할 수 없도록 비밀을 보장함으로써 이 실록의 진실성과 신빙성을 확보하였다.실록이 완성된 후에는 특별히 설치한 사고(史庫)에 각각 1부씩 보관하였는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사고의 실록들이 병화에 소실되기도 하였으나 그때마다 재출간하거나 보수하여 20세기초까지 정족산, 태백산, 적상산, 오대산의 4사고에 각각 1부씩 전하여 내려왔다.정족산, 태백산 사고의 실록은 1910년 일제가 당시 경성제국대학으로 이관하였다가 광복 후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그대로 소장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오대산 사고의 실록은 일본으로 반출하여 갔다가 관동대지진으로 소실되어 현재 27책만 남아 있다. 적상산본은 구황궁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북한이 가져가 현재 김일성종합대학에 소장되어 있다. 1984년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함께 보관되어 있는 조선왕조실록 정족산본 및 태백산본을 분리하여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