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로마시대에는 목욕탕에서 면도를 했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로마 시대 목욕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사교의 성격이 컸습니다. 오전엔 포럼 등에서 공적인 업무를 보고 오후에 즐겼다. 단순히 탕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시설을 만든 이유입니다. 도서관은 물론이고 강당도 설치해 학술강연도 펼쳤습니다. 이때의 목욕 방법은 먼저 뜨거운 열기욕으로 땀을 뺀 뒤, 온탕에서 몸을 뻗고 긴장을 풀어주고, 냉탕에 들어갔다 나와 몸을 문질러줍니다.질병 예방 효과를 위해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드나드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심장 발작을 염려해 병약자들은 피할 것을 권했습니다. 목욕 뒤에는 피부 관리를 위해 올리브유 마사지가 좋다고 봤습니다. 이런 목욕을 하루에 2~3번 권했는데 서민 이하는 목욕을 하루에 한 번 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에 귀족이나 왕족만 가능했다고 합니다. 귀는 식초로 닦았고, 이를 표백하기 위해 소변으로 닦았는데, 다만 면도는 이발소를 따로 찾았다고 합니다.
Q. 고대이집트에선 제모크림을 사용했었는데 어떻게 만들어서 사용한건가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제모의 역사는 BC 1900년 페르시안들이 거주하던 이집트와 그리스, 중동 일부지역에서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벌꿀을 사용하였으나 BC 1000년이후 파푸기니를 중심으로 설탕이 보급되면서 설탕을 주원료로 사용한 슈가 페이스트가 만들어져 제모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남녀 모두 몸에 난 털을 말끔하게 다듬었는데 몸의 털을 그냥 방치하는 사람들은 노예나 이방인들 뿐 이었다고 한다. 머리, 얼굴, 수염과 눈썹, 온 몸을 제모하였고 남자 뿐 아니라 여자들도 머리카락을 면도칼로 밀어서 제모를 했다고 전해진다. 털이 없는 매끈한 피부가 미의상징 이었으며 순결과 젊음, 그리고 높은 지위를 상징하는 지표가 체모없는 매끈한 피부였다고 한다. 혼인을 치루기전 신부는 머리카락과 눈썹을 제외한 모든 체모를 제모 하였으며 결혼이라는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기전 깨끗한 몸과 아름다운 피부를 갖기 위한 제모, 왁싱은 필수였다. 또한 이집트의 기후적 특성상 날씨와 습도 때문에 체모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청결을 위해 제모, 왁싱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Q. 나례를 차력이나 서커스로 봐도 되나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나례(儺禮)는 귀신을 쫓아내는 종교 의례 중 하나이다. 그런데 귀신을 쫓을 때에 주력(呪力)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히 기원으로써 쫓는 방법과 조력을 사용하여 귀신을 쫓는 방법이 있다. 나례는 후자의 방법을 쓰는 구나행사(驅儺行事)인데 고려 정종 이후에 이룩된 듯하다.관상감(觀象監)의 주재하에 행해진 궁중의 나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제석(除夕) 전날 밤에 창덕궁과 창경궁궐 뜰에서 나례가 벌어졌다. 그 제도를 보면 악공(樂工) 한 사람이 창사(唱師)가 되어 붉은 옷을 입고 탈(假面)을 쓴다. 또 탈을 쓴 방상씨(方相氏) 4명이 황금빛 나는 네 눈을 뜬 채 곰가죽을 뒤집어 쓰고 창을 들고 목탁을 두드리며 서로 치고 받고 한다. 지휘자 5명이 역시 붉은 옷에 탈을 쓰고 그림을 그린 벙거지를 쓰고 있다. 또 판관(判官) 5명은 녹색 옷에 탈을 쓰고 역시 벙거지를 쓰고 있다. 조왕신(부엌신) 4명은 청색 도포를 입고, 복두를 쓰고, 목홀(木笏)을 지니고 탈을 쓴다. 소기(小妓) 여럿이 여자 적삼에 탈을 쓰고 치마 저고리는 홍록색(紅綠色)이며 긴 간당(竿幢)을 들고 있다. 또 12신은 각각 귀신탈을 쓰고 있는데 자신(子神)은 쥐 모양을 하고, 축신(丑神)은 소 모양의 탈을 쓰고 있다. 악공들 20여 명이 복숭아가지로 만든 비를 들고 뒤를 따른다. 아이들 수십 명이 뽑혀서 붉은 옷을 입고 붉은 수건과 탈을 쓰고 진자가 된다. 진자는 12∼16세의 소년이었다. 창자(唱子)가, "갑작(甲作:神名)은 흉한 놈을 꺾고 필위(神名)는 호랑이를 먹고… 만일 네가 급히 가지 않아 늦으면 이들의 양식으로 만들리라. 빨리빨리 법대로 시행하렷다"고 고함을 치면 진자는 "물러가겠노라"고 머리를 조아리고 복죄한다. 이때 모든 사람이 북과 제금을 울리면서 창하면 귀신들은 드디어 쫓긴다.이 의례는 사신(邪神)을 쫓는 목적 외에도 칙사(勅使)의 위안으로 수시로 베풀어졌다. 이런 때에는 광대들의 창(唱)이 동원되었다. 나례에 있어서 처용무(處容舞)는 대대적으로 악공(樂工)과 기녀(妓女)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곡예·희학지사(戱謔之事)는 재인(才人)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이것들은 잡희·백희·나희 등으로 불리었다. 나례 출연자의 명칭에는 나례청에 소속된 우인(優人)·배우·광대·창우(倡優)·수척(水尺)·중(僧)·재인(才人)·현수(絃首)재인·백정·희자(戱子) 등이 있었는데 사회적으로 천시당했다. 나례의 상연 장소는 주로 야외였고, 궁중에서는 사정전(思政殿)·명정전(明政殿)·인정전(仁政殿) 등이었다.
Q. 남사당패 6마당은 무엇으로 구성되어있나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남사당패의 놀이는 풍물,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탈놀음), 덜미(꼭두각시놀음) 등 여섯 종목이 남아 전한다. 얼른(요술) 등의 종목은 이미 사라졌다. 이 6가지 놀이는 대략 밤 9시부터 다음날 새벽 3∼4시까지 연희되어 총 6∼7시간을 공연하였지만 현재는 2∼3시간 정도로 축소 연희되고 있다.풍물마을 단위의 농악대와는 달리 일년 열두달을 계속하며, 이를 직업으로 하는 농악놀이이다. 풍물은 남사당놀이의 대표격으로, 숙련된 남사당들의 체기(體技)를 겸한 춤사위와 가락은 전라도나 경상도의 가락인 아랫다리 가락에 비해 윗다리가락의 대표적인 가락으로 힘차고 절도가 있다. 특히 무동(舞童)춤은 5무동 이상이 아슬아슬한 묘기를 하며, 상무의 극치인 열두발 상모를 끝으로 한다. 일종의 농악인 인사굿으로 시작하여 돌림벅구·선소리판·당산벌림·양상치기 등 24판 내외의 판굿을 돈다음 상쇠놀이·따벅구(벅구놀이)·징놀이·북놀이·새미받기·채상놀이 등의 순서로 농악을 친다. 이 풍물은 웃다리 가락(충청·경기·이북지방)을 바탕으로 하며 꽹과리·북·징·장구·날라리 땡각(令角)의 잽이(악사)와 법고 등을 포함한 최소 24명 정도가 일조를 이루는데 짜임새 있는 진풀이와 동니·채상 등의 몸재주와 묘기를 가미하여 연희적 요소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버나(사발돌리기)담뱃대나 나무끝 또는 칼끝으로 사발이나 쳇바퀴를 자유자재로 돌리며 묘기를 부리는 기예(技藝)로서 역시 풍물반주로 진행된다. 이 놀이의 묘미는 접시 등을 돌리는 외에 돌리는 사람인 버나잽이와 받는 소리꾼인 매호씨(어릿광대)가 주고 받는 재담과 소리가 극성(劇性)이 짙은 데 있다.살판(땅재주)물구나무서기 등 일종의 기계체조이나 그보다도 강렬한 풍물반주에 맞추어 온갖 체기를 다하는 기예이며, 몸짓의 확대된 표현 속에서 죽느냐(죽을판) 사느냐(살판) 하는 절실함이 있다. 잘하면 살판이요, 못하면 죽을판이라는 뜻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종류는 앞곤두·뒷곤두·번개곤두 등 11가지 순서를 가지고 있는데, 본래는 대광대패나 솟대쟁이패의 놀이 가운데 하나였는데 남사당놀이로 수용한 것이다. 살판쇠(땅재주꾼)와 매호씨가 잽이의 장단에 맞추어 재담을 주고받으며 재주를 부린다.어름(조선줄타기)외줄로 꼰 줄 위에서 어릿광대와 말을 주고 받으며, 풍물장단에 맞추어 온갖 춤을 다 추고, 갖은 걸음걸이로 어름 위에서처럼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는데, 풍자 연희의 멋이 다른 서구적 줄타기 또는 서커스 줄타기와는 다른 점이다. 줄타는 사람을 어름산이, 그 아래서 대사를 주고 받는 사람을 어릿광대라고 한다. 줄타기 곡예로 얼음 위를 걷듯이 어렵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종류는 앞으로 가기·장단줄·거미줄 늘이기 등 15종의 순서가 있다.덧뵈기(가면극)덧보인다, 덧보이게 한다라는 연극 본연의 의미를 지닌 우리 연극의 원명으로 분장 대신 탈을 쓰는 가면극을 말한다. 춤보다는 재담과 연기가 우세한 풍자극으로 마당씻이·옴탈잡이·샌님잡이·먹중잡이 등 네마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때그때 지역민의 취향과 흥취에 영합하였다. 이는 지역 단위의 가면극과는 달리 대사를 위주로 하는 막간극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덜미(꼭두각시놀음)덜미는 인형극을 말하는 것으로 인형의 덜미를 잡고 한다는 데서 연유되었다. 남사당놀이의 마지막 순서로 한국에 하나밖에 전하지 않는 전통인형극인 꼭두각시놀이다. 대개 두마당 일곱거리로서, 즉 박첨지마당(박첨지유람거리·피조리거리·꼭두각시거리·이시미거리), 평안감사마당(매사냥거리·상여거리·절짓고 허는 거리)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