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아프리카의 경제성장이 다른 대륙에 비하여 유의미하게 낮은데 그 이유는 무엇이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그 이유는 5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과거 많은 아프리카 국가가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 침탈당했고, 온갖 핍박 끝에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꿈에 그리던 독립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독립은 아프리카에 정치적 자유와 경제 발전 가능성을 열어 주었지만, 안타깝게도 아프리카는 이때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서구 열강의 식민통치에서 어렵사리 독립한 아프리카 국가 대부분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제국주의 사상으로 오해하고 완강하게 거부했습니다. 결국 아프리카는 제국주의에 대한 강한 반감을 엉뚱하게 자본주의, 자유기업, 외국의 투자 배척으로 드러냈고 사회주의 노선을 선택하는 악수를 두었습니다. 그 결과 독립 후 50여 년이 지난 지금 아프리카는 대다수가 독립하기 전보다 훨씬 심각한 빈곤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해외 구호에 목숨을 의탁하는 사이, 사회주의 노선을 선택한 권력자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부를 축적하며 ‘국민 모두가 아니라 그들만 잘사는’ 세상을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Q. 고려 무신정권기 권력자 중 한 명인 경대승은 요절했다고 들었습니다 사망 원인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경대승은 집권 4년차인 1183년 7월, 30세의 이른 나이에 병으로 요절하는 비운을 맞는다. 사망 원인에 대해선 주로 정신적 문제가 병으로 이어진 것이라는 설이 많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이의민 세력이나 혹은 부하에 의해 암살당한 것 아니냐는 설도 제기하지만 일단 고려사에는 정중부의 꿈을 꾸고 병을 얻어 이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고 기록되어 있다.경대승의 요절은 그가 바라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 많은 정적으로 인한 스트레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 원인으로 추측된다. 경대승은 무인임에도 경인년 이전으로 되돌리기를 원했고, 다시 조정을 문신들 위주로 바꾸기 위해 무신들을 숙청하거나 무신들의 권력 기관인 중방의 권한을 줄이면서까지 문신 우대 정책을 펼쳤지만 무신들에게 옹립된 명종의 눈에는 좋게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Q. 교황청이 프랑스 아비뇽에 있었던 적도 있나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309년 ~ 1378년, 교황청이 프랑스의 아비뇽으로 이전했던 시기를 아비뇽 유수라 하는데 '유수(幽囚)'는 '잡아 가둠'이라는 의미로, 교황이 사실상 한지에 유폐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바빌로니아에 의해 유대 왕국이 사라지고 유대인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갔던 '바빌론 유수'에 빗대어 붙여진 이름이다.1376년 그레고리오 11세가 로마로 돌아가서 2년 후인 1378년에 사망하고 새 교황이 로마에서 선출되면서 막을 내렸지만, 프랑스 왕국이 이에 불복하여 아비뇽에 또다른 교황을 선출하면서 1418년까지 40년간 서방교회 대분열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교황청의 입지는 추락했고, 교황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위클리프파, 후스파, 공의회수위설 등이 득세했다. 교황은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더욱 세속군주화되었다. 또한 이 사건으로 아비뇽은 신성 로마 제국에서 교황령으로 이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