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1991년 냉전은 어떻게 종식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김휴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과격파 공산주의자들의 쿠데타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다.파리에서 22개 국가들이 재래식무기감축조약(CFE)에 서명함으로써 냉전 시대에 마침표를 찍었다. 동서간 군축 협상은 1969년에 처음 시작되었으며, 전략적 무기를 제한하는 데에도 일련의 합의를 이끌어 냈다. 그러나 재래식무기의 경우에는 그리 쉽지 않았다. 소련이 동서 양측이 동일한 "규모"로 축소할 것을 요구했는데, 그럴 경우 소련은 수적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확보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이를 예방하기 위해 동일한 "수준"의 축소를 주장했다. 소련이 우랄 산맥 너머, 즉 법적으로는 유럽을 벗어난 곳에 무기를 비축해두었다가 필요한 경우 재빨리 되가져오는 사태가 벌어질 경우, 조약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보아야 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1980년대 말,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혁으로 경제 위기가 발생하자, 소련은 군비의 대규모 축소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고르바초프는 유럽 내에서 엄청난 금액의 일방적인 군비 축소를 발표하였다. 덕분에 조약 체결에도 숨통이 트였다. 재래식무기감축조약은 군인 수와 무기를 제한하고, 유럽 내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바르샤바조약기구(WTO) 양쪽 모두 이를 준수하도록 했다. 예를 들면 탱크 2만 대, 화기 2만 문, 전투기 6,800기, 공격용 헬리콥터는 2,000대로 제한되었다. 모든 잉여 무기는 엄격한 검증 절차하에 폐기하도록 했다.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그 자리를 대신한 신생국들 역시 조약을 승인하도록 요구 받았다. 재래식무기감축조약이 조인된 이후 동서 관계의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낙관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2007년 7월,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중앙 유럽에 레이더 기지를 설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미국의 새로운 미사일 방어 시스템에 항의하여 조약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Q. 고대 잉카문명의 기원 및 쇠퇴 과정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김휴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남아메리카 페루 남부 쿠스코분지를 중심으로 15~16세기 초까지 번영했던 잉카제국의 문화를 말한다. 마야문명과 더불어 인디언 문화의 쌍벽을 이룬다. '잉카'는 태양의 아들이라는 뜻인데 황제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잉카제국은 북쪽으로는 에콰도르로부터 남쪽으로는 칠레 중부에 이르는 대제국을 형성하여 그때까지의 안데스문명을 집대성했다. 씨족 공유의 토지제도와 농경중심으로 신권정치가 행하여졌다. 관개ㆍ도로ㆍ운하 등의 토목공사가 발달하였고, 우수한 사회복지적 제도 아래 통치되었던 능률적이고 합리적인 국가였다.잉카족은 일명 케추아족이라고도 하며, 그 기원은 확실하지 않으나, 1240년경 쿠스코분지에 침입하여 원주민을 정복하고 정주한 것으로 추측된다. 정복자 에스파냐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잉카의 전설에 따르면 초대 '망코 카파크' 이후 13명의 황제가 있었는데, 제7대까지는 전설 속의 인물이다. 제8대 황제 비라코차시대에 강적 창카족의 공격을 받았으나, 그를 격퇴하는데 성공한 그의 아들 티투 쿠시가 제9대 황제 '파차크티'가 되어 많은 개혁을 단행하는 동시에 주변 여러 민족을 정복하여 제국을 이룩하는 데 기초를 닦았다. '파차크티' 자신이 정복한 곳은 티티카카호 연안 루파카족과 쿠스코 동쪽에 있던 쿤티스유 지방 등이었고 그 아들 '투파 잉카 유팡키'도 페루 북부에 쳐들어가 치무왕국을 멸망시켰으며, 파차크티가 죽은 뒤에는 에콰도르와 칠레, 아르헨티나의 북부까지 정복했다. 15세기 말 잉카가 죽자 '우아이나 카파크'가 잉카가 되어 에콰도르지방 개척에 주력했기 때문에 원래 수도인 쿠스코에 있던 잉카지배층과 에콰도르 키토에 있던 잉카 부장 사이에 대립이 시작되었다. 1525년 무렵 우아이나 카파크가 죽은 뒤 쿠스코에는 우아스카르가, 키토에는 아타우알파가 대두했으며 1531~32년에 내란이 일어났다. 아타우알파군이 쿠스코군을 완전히 제압함으로써 내란은 끝났으나 그 직후 피사로가 인솔하는 스페인군이 침입하였다.1532년 11월 16일 고원도시 카하마르카에서 스페인군에게 '아타우알파'가 사로잡혀 사실상 잉카제국은 무너졌다. 스페인군은 이타후알파의 배다른 동생인 '망코2세'를 왕위에 올렸으나 망코 잉카와 그 아들들이쿠스코 북서쪽 산 속에 진을 치고 스페인군에게 저항을 계속했다. 그러나 1571년 마지막 잉카 '투팍 아마루'가 스페인군에 처형되자 40여 년에 걸친 잉카인들의 저항은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