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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장웅 전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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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웅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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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대한민국 최고의 곡창지대는 어디인가요
안녕하세요. 이장웅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호남지방입니다. 호남 지방은 우리나라를 북부, 중부, 남부로 나누었을 때 남부 지방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행정 구역상 전라남도와 전라북도가 속한곳인데요, 넓은 평야가 발달해 있어 농업이 발달한 지역으로 산업화 이전에는 인구가 많은 지역이었으나, 산업화 이후 수도권으로 인구가 엄청나게 이동하여 전체적으로는 인구가 정체 혹은 감소 상태에 있습니다. 전주·익산·군산 도시권과 광주 도시권, 목포권, 여수·순천권에 도시가 발달해 있다. 서해안 쪽으로 드넓은 평야가 발달해 있으며, 우리나라 최대의 곡창 지대입니다.참고로 호남은 원래는 호수의 남쪽에 위치한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이 호수는 여러 설이 있으나 김제의 벽골제호가 유력하고 또한 금강 이남을 강남도라 부른 데에서 호수는 금강을 가리킨다고도 합니다.답변이 도움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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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왜 생일날 미역국을 먹나요?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이장웅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미역은 전통적으로 산후조리 중인 산모에게 제공됩니다. 이 해초는 요오드와 철분을 제공하는 훌륭한 공급원이며 해독하는 특징이 있기에 산후 회복에 이상적인 식품인데요, 그래서 한국인들은 생일에 어머니께 경의를 표하기 위해 미역국을 먹습니다.나아가 미역국을 먹는 풍습의 유래를 살펴보자면 옛날 산모들은 아이를 낳았다고 바로 미역국을 떠먹은 것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산모 머리맡에다 흰 쌀밥과 미역국, 그리고 정한수 한 그릇으로 삼신상을 차린 후에야 산모가 미역국을 먹었다고 하는데요, 이를 첫 국밥이라고 합니다. 삼신할머니에게 출산에 대한 감사와 아이와 산모의 건강을 빌면서 미역국을 먹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일 미역국은 한민족 생명의 바치는 감사와 소원을 비는 음식인 것입니다.답변이 도움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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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역사적으로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뭘 멋고 살았나요?
안녕하세요. 이장웅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 시대는 주로 수렵과 채집을 통해 식량을 얻었습니다. 과거에는 'Man the hunter(사냥하는 남자)'라는 개념이 강해서 사냥에 의해 주도된 시대라고 여겼다. 하지만 극지방을 비롯한 예외적인 환경을 제외한다면 수렵-채집 집단의 영양공급에서 채집식량의 비중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물론 수렵-채집사회의 식량자원 획득은 그들이 생활하는 주변 자연환경의 다양성 만큼이나 천차만별로 다양하기에 일반화 하기에 어렵지만, 대체로 사냥, 어획 등을 통해 얻어지는 동물성 영양소와 채집으로 얻어지는 식물성 영양소의 비중은 6:4~4:6 정도로 평균적으로 거의 비슷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명칭도 '수렵사회'나 '채집사회'가 아니라 '수렵-채집 사회'가 맞는 표현입니다.덧붙여 설명하자면 가장 쉬운 채집으로는 곤충채집입니다. 곤충은 어떤 동물보다 수도 많고 잡기도 쉬워서 큰 체력소모나 위험 부담 없이 얻을 수 있는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입니다. 다만 그 크기가 작아 질량 대비 열량 효율이 낮습니다. 그 외에는 이미 죽은 동물의 사체나(이를 위해 사체를 찾아다니는 독수리 같은 새들을 따라다니기도 했다.) 맹수들이 사냥한 먹잇감을 빼앗거나 그들이 남긴 것을 가져가 먹는 스캐빈징이 있습니다.답변이 도움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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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팔만대장경의 유례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장웅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부처의 힘으로 외적을 물리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 고 현행 한국사 교육에서는 가르치지만, 이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외적의 침공이라는 국난 앞에서 종교에만 의지하던 고려 조정의 나약함과 무능한 이미지만을 주목하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사학자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는 1924년에 발표한 논문 《고려의 대장경》에서 팔만대장경을 두고 "몽골의 침공으로 나라가 풍전등화인 상황에서 국방 능력이 없었던 고려 군신들의 종교상 미신의 결과물"이라고 비웃기도 했었고요. 12-13세기 사람 이규보도 "전에도 거란이 쳐들어 왔을 때 초조대장경을 새기니 거란이 알아서 물러갔는데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썼기 때문에 오해를 사기 더욱 쉬운 면도 있습니다.이에 대해 서여 민영규(閔泳珪) 박사는 1996년에 발표한 《고려대장경 신탐 - 바로 잡아야 할 그리고 새로운 몇 가지 사실들》이라는 논문에서 대장경 조판이 가지는 의의를 재조명하고자 했고, 여기서 민 박사는 고려 최씨 무신 정권이 불교계를 회유하기 위한 결과물이 바로 재조대장경 조판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고려 무신 정권, 특히 최씨 무신 정권은 선종 불교와 가까워서 상대적으로 기존 왕실이나 귀족들에 가까운 교종 불교계와 사이가 소원했는데요. 몽골군 침공이라는 미증유의 국난으로 부인사(符仁寺)에 있던 초조대장경이 불타는 지경에 이르자, 정권의 반발세력인 교종 불교계를 회유해 아군으로 끌어들이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최씨 정권을 중심으로 국가 결속을 강화하고자 '재조대장경'이라는 16년에 걸친 불교 사업을 주도했다는 것이고, 한 번 만들었던 대장경을 다시 만들었다고 팔만대장경을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이라고도 부릅니다.답변이 도움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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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은 어떤강인가요? 또 우리나라 가장 긴 강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장웅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세계에서 가장 긴 강을 두고 아마존강과 나일강 이 두 개의 강이 비등비등한 상태인데요, 여러 매체마다 이 강들의 길이가 다르게 나오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언제, 어떻게, 누가 측정하느냐의 따라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또 물이 말라있는 상태에서 혹은 물이 불어난 상태에서 측정하면 또 달라지기 때문에 순위가 바뀌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공식적으로는 나일강이 더 길다고 인정받고 있습니다.하지만 아마존강이 나일강보다 더 크다는 말이 아예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는게 아마존강의 폭은 세계에서 가장 넓다고 합니다.당연히 강의 수량도 나일강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많구요.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강은 압록강인데요, 압록강은 남북한을 통틀어 가장 긴 강이에요. 백두산에서 흐르기 시작한 압록강은 북한과 중국의 국경을 이루며 황해로 흘러가지요. 추운 겨울이 되어 압록강 강물이 얼면 언 강을 통해 중국과 북한을 오갈 수도 있답니다. 분단이 되기 전에는 경의선 기차를 타고 신의주까지 간 다음 기차를 갈아타고 압록강의 다리를 건너 중국 대륙까지 갈 수 있었어요. 압록강이라는 이름은 ‘강물 빛이 오리의 머리 빛깔처럼 새파랗다.’는 뜻에서 나왔어요.답변이 도움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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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국보의 순서는 무작위로 매겨지는건가요?
안녕하세요. 이장웅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국보 지정의 연혁에 따르면 일제감정기 때 《조선보물고적명승 천연기념물 보존령》에 의해 지정된 것이 시초입니다. 당시 문화재를 지정할 때 조선총독부 건물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정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국보 제1호는 남대문(숭례문)이 되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보물 1호는 흥인지문(동대문)입니다.다만 이 번호의 경우 말 그대로 분류 등의 행정 편의를 위해 붙어 있는 거지, 번호에 특별한 의미는 없습니다. 즉 숭례문이 국보 1번이라고 하여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중요한 국보가 아니라는 얘기. 숭례문을 말할 때 '국보 1호'를 굳이 강조하기도 하는데 이는 사람들이 1호라고 하면 뭔가 더 있어 보이는 착각을 이용한 마케팅에 가깝습니다. 국보나 보물의 번호는 단순한 지정 순서에 따라 붙였을 뿐이며, 지정 해제 사유가 생겨 국보/보물에서 지정 해제되면 비는 번호는 채우지 않고 그 번호는 그대로 공번이 됩니다.국보와 보물의 지정번호는 그 시행 목적이 일제의 행정 편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지적과 국보의 가치와 번호를 혼동하는 일 때문에, 국보 번호를 철폐하자는 의견이 지속되어 왔고, 드디어 국보 지정 번호는 2022년부터 문화재보호법 시행령 개정에 의해 교과서, 표지판 등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답변이 도움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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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우리나라 전통주 막걸리의 역사가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이장웅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역사를 고찰하자면 고려시대 때 문헌에 탁주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고 송나라 서궁의 [고려도경]에 '(고려의) 서민들은 맛이 떨어지고 빛깔이 짙은 술을 마신다.' 고 기록된 술 역시 탁주로 보고 있으며, 조선시대 이르러 수많은 양반 종가 가문에서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가양주가 있었는데 각각의 세부적인 재료와 비율은 제각각이나, 이들의 공통점은 쌀이나 보리와 같은 곡식으로 밑밥을 지어 증류한 후 맑은 물을 걸러내는 식입니다.현대에서 탁주와 막걸리의 차이점은 크게 다르지 않으며 현대에서는 탁주는 각종 재료와 상관없이 증류 이전의 밑술을 의미하며 막걸리는 쌀을 주 원료로 한 것을 의미하며 탁주라는 범위 안에 막걸리가 포함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답변이 도움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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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오카리나 모양은 왜 오리 모양인가요?
안녕하세요. 이장웅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오카리나는 흙을 빚어 가마에서 구워낸 도자기형 취주악기 입니다. 토기 형태의 피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하였으나, 현대의 오카리나 형태는 19세기 이탈리아의 부드리오 출신 주세페 도나티(Giuseppe Danati; 1836~1925)에 의해 고안된 것입니다. 모양은 오리모양만 있는것이 아닌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요, 초창기의 오카리나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다양한 형태의 오카리나가 제작되었으며 크게 T형 오카리나와 랭글리(Langley)형 오카리나로 나누어집니다. T형 오카리나는 국내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형태로 한글 자음의 ‘ㄱ’과도 비슷한 모양이며 크기는 10~20cm로 다양합니다.답변이 도움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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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모자이크 기법은 언제 누구에서 부터 시작이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이장웅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모자이크란 작은 단편들을 모아 일정한 형상을 표현하는 미술기법을 말합니다. 여러 가지 색의 돌이나 유리, 금속, 조개 껍질, 타일 등을 조각조각 접합시켜서 무늬나 회화를 형성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기원한 이 기법은 그리스를 거쳐 로마에 수용되었고 특히 비잔틴 시대에 성행하였다. 고대 중앙 아메리카에서는 일찍이 모자이크 기법이 발달하여 마야 문화나 아즈텍 족의 유물 중에는 모자이크로 장식된 것이 많다. 고대 오리엔트나 고전기 그리스에서도 벽이나 천장 등의 장식으로 사용되었고, 특히 헬레니즘 시대 이후 발전하였다. 폼페이에서 출토된 모자이크나 라벤나 성당의 모자이크 등이 대표적이다. 이후 뜸하게 제작되던 모자이크는 19세기 말에 스테인드 글라스와 함께 부활하여 현대에는 공공 건축이나 종교 건축 등의 장식에 많이 쓰입니다.답변이 도움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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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남여가 유별한다는 정확한 의미가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장웅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남녀유별(男女有別)이란?남자 남, 여자 녀, 있을 유, 나눌 별 -> 즉 '남자와 여자 사이에 구별이 있다.' 라는 뜻입니다.조선 시대에는 남자가 할 일, 여자가 할 일을 철저하게 구별했습니다. 남자는 집안의 가장으로 일을 하거나 가족을 대표했고, 여자는 아이를 기르며 요리와 집안일에만 전념해야 했죠. 그렇기에 여자가 글공부를 하는 건 상상할 수 없었고., 그러면서 여자의 사회적 지위가 점점 더 낮아졌습니다.답변이 도움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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