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옛날 과거시험의 문제는 뭐가출제됐을까요?
안녕하세요. 조선 중종 10년(1515년) 8월 한양 성균관에서 치러진 과거시험의 문제는 ‘이 시대에 요순시대 같은 이상적인 정치를 하려면 먼저 무엇에 힘써야 하는가’라는 문제였다고 합니다. 문과의 생원·진사시험에 합격한 유생들을 대상으로 치르는 이 시험은 중종이 직접 문제를 냈습니다. 중종은 “공자는 ‘만일 누가 나에게 나라를 맡아 다스리게 한다면, 1년이면 그런대로 실적을 낼 것이고, 3년이면 정치적 이상을 성취할 것이다.’ 나는 부족한 덕으로 다스린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나라의 기강과 법도가 세워지지 않았다”며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그대가 공자라면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겠느냐.”당시 33세의 조광조는 “전하께서는 도(道)의 실현을 정치의 목표로 삼고, 마음을 정치의 근본으로 삼으십시오. 하늘의 이치로 백성을 인도해야 합니다. 임금이 하늘의 이치를 잘 관찰해 그 도리에 따라 성실하게 일을 행한다면, 나라를 다스리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라고 답을 적었다고 합니다.
Q. 벨기에는 왜 프랑스와 네덜란드어를 함께 공용어로 쓰나요?
안녕하세요. 벨기에가 여러 언어권이 합쳐진 것은 오랜 역사 과정 때문입니다. 벨기에는 프랑스와 네덜란드, 독일 사이에 위치해 있는데, 과거에 켈트족(갈리아)과 게르만족이 이동하며 교차하던 지역입니다. 그 흔적이 오늘날까지 이어져서 벨기에가 복수의 공용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의 원민족인 켈트족 지역이 왈롱 지역이고, 게르만의 일파가 살던 지역이 플란더스 지역입니다. 벨기에가 네덜란드에서 독립할 때 남부 왈롱 지역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주도했기 때문에 프랑스어가 공용어였고, 북부 플란더스인들의 불만이 높았습니다. 독립 당시 헌법은 언어에 대한 자유를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까지 공공기관에서는 프랑스어만 사용해 왔습니다. 헌법도 프랑스어 버전만 있었습니다. 헌법으로 언어의 자유를 인정해놓고 실제로는 프랑스어를 강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인구의 60%가 네덜란드어를 사용하고 있는데다 2차 대전 이후 플란더스 지방에 공업화가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북부 사람들도 자신들의 언어를 찾자는 운동이 벌어졌으며 플란더스 사람들은 언어차별 철폐운동을 벌였고, 그 결과로 네덜란드어권이 공식화되었습니다.
Q. 우리나라 전통악기중 타악기는 어떤게있나요?
안녕하세요. 우리나라의 전통 타악기들에는 꽹과리, 장구, 징, 바라, 편경, 편종, 특경, 특종, 박, 운라, 방향, 절고, 진고, 어, 축, 노고, 노도 등 다양한 악기들이 있습니다. 이중에서 꽹과리, 징 등은 대표적인 금속 타악기들이며 편경, 편종 등은 다양한 음율을 낼 수 있는 유율 타악기에 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