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양화대교 북단에 있던 나루터로서, 한강도와 아울러 고려 때부터 중요한 도선장의 하나였으며 조선 초에 이미 도승이 배치되었다. 양천을 거쳐 강화로 이어지는 길목으로, 강화가 교통 · 관방상으로 중요시되던 당시에 있어서 그 비중은 매우 컸다. 양화도에서 보유한 진선은 10척 내외의 관선과 이와 별도로 사선의 나룻배도 있었다. 연산군 때는 노량도 외의 모든 진도를 금하고 진선은 모두 동원되어 국왕의 뱃놀이에 사용되어 양화도 역시 쇠퇴하였다.
중종 초기의 기록에 의하면 나루를 건너고자 하는 사람은 많고 진선은 단지 2척뿐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먼저 건너가기 위하여 많은 짐을 갖고 한꺼번에 승선하기 때문에 자주 침몰 사고가 일어났다고 한다. 그리하여 조선 후기에는 어영청으로 하여금 이곳에 별장을 두어 관리하게 하였는데, 이때 양화진에 비치된 진선은 9척이었다. 양화진 별장은 인근의 공암진 · 철곶진까지 관장하였다. 양화도 일대 역시 경치가 좋아서 중국의 사신이 오면 종종 이곳에서 선유를 베풀었으며, 사대부들의 별장도 많았다고 한다.
출처 : 서울지명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