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로고
검색 이미지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31
오녀산성이 무슨 지리,지역인가요?

안녕하세요.

역사적으로 '오녀산성'이 무슨 지리,지역,문화재,성채 등등 인가요?

오녀산성에 관한 일화 같은건 있나요??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 랴오닝성 번시시(本溪市)가 관할하는 환런 만(주)족 자치현(桓仁 滿族 自治縣)에 위치한 고구려 시대의 산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고구려 왕조의 첫 번째 수도였던 졸본성에 위치하는 산성으로 메사 지형이라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졸본이라는 수도 자체에 피난성으로서 오녀산성이 존재했다. 이와 반대되는 개념의 일상적인 도성이었던 평지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그 후보로는 하고성자토성, 나합성 등이 거론되고 있다.

    오녀산성 이야기

    오녀산성은 환인현에서 동북으로 8.5km 거리에 있는 혼강 맞은편 기슭인 五女山상에 위치하고 있다. 오녀산은 해발 800m 정도이며, 정상부의 지세는 평탄하지만 정상부의 주변은 100-200m 높이의 절벽을 이루고 있다. 성은 남북으로 길쭉한 부정형을 이루고 있으며, 절벽 윗부분의 평탄한 정상부와 정상부 동쪽의 완만한 사면을 포용하고 있다. 정상부는 남북의 길이가 600m 동서의 너비가 110-200m 정도이며, 전체적으로 천연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서쪽방면에서 정상부로 진입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서문주변에만 일부 성벽이구축되어 있다. 동사면을 포괄하고 있는 성벽은 정상부의 동남쪽 해발 670m 지점에서 사면을 따라 내려와 해발 610m 지점에서 단애를 따라 곳곳에 인공적인 성벽이 구축되어 있다.

    성의 전체 둘레는 4,754m이며 그중 천연성벽이 4,189m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인위적으로 축조한 성벽은 565m로 12%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성벽 하단부의 너비는 4~6m이고 상부의 너비는 2.2~4.4m로 단면을 보면 위가 좁은 사다리꼴을 하고 있다. 동벽도 대부분 붕괴된 상태이지만 높은 곳은 6m 정도 남아있다.

    오녀산성에 대한 발굴조사는 1996년부터 2003년까지 4차에 걸쳐 요녕성문물고고연구소와 본계시박물관, 환인현문물관리소가 연합으로 실시하였다. 평탄한 정상부의 건물지조사가 주로 진행되었으며, 성벽조사는 서문지와 동문지 등 일부구간에 대해서만 실시되었다.
    발굴조사 결과 정상부의 토층은 대략 50cm 정도로 얇고, 표토층와 흑갈색층, 황갈색 층 등 3개의 층으로 구분되었다. 표토층은 10-20cm 정도이며 여러 시기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두 번째층인 흑갈색층은 대략 10-25cm 정도의 두께이며 흑회색도기편과 백자편 등 송, 금나라 시기의 유물이 주로 출토되었다. 세 번째층인 황갈색토층은 10-18cm 정도이며 사립이 혼입된 홍갈색토기편과 갈색토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발굴조사 보고서에서는 출토유물을 근거로 다음과 같이 5개의 시기로 구분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녀산성 (문화원형백과 한국의 산성, 2004.,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나무위키 오녀산성


  • 든든한소쩍새224
    든든한소쩍새22423.06.03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오녀산성(五女山城)은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번시 시(本溪市) 환인현(桓仁縣) 오녀산(五女山)에 위치한 산성(山城)이다. 해발 800미터 높이에 이르는 절벽의 천연 지세를 그대로 이용하여 쌓은 고구려 특유의 테뫼식 축성 양식을 보여준다.

    -출처:위키백과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오녀산성(五女山城)은 중국 랴오닝성 환런현 '오녀산'에 있는 산성으로 고구려의 첫 도읍지 졸본성으로 불렸습니다.

    질문자님, 광개토대왕릉비에는 추모왕이 비류곡(沸流谷)의 홀본(忽本) 서쪽의 산 위에 성을 쌓고 도읍을 정하였다고 하였는데, 이곳 오녀산성이 이 때에 쌓았다는 성으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으나 고고학적인 뒷받침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질문자님, 그리고 명칭도 오녀산성은 고구려인이 만든 '광개토왕릉비'에는 홀본성(忽本城)이라고 하고 있고, 삼국시대에는 환도성(丸都城)또는 졸본성(卒本城)으로 불렸습니다.

    그리고 고려사 공민왕조에는 오로산성(五老山城) 또는 우라산성(于羅山城)이라고 나타나 있습니다.

    질문자님, 문제는 중국의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인해서 이미 2004년 다른 고구려 유적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현재로 보면 환런현 중심에서 8km 떨어져 있는데 해발 820m에 있고 200m 높이에 이르는 절벽의 천연 지세를 그대로 이용하여 장벽을 만들고 동쪽과 남쪽의 산세가 완만한 곳만 성벽을 쌓았습니다.

    오녀산성의 전체 평면은 직사각형에 가까우며 남북길이 600m이며 동서너비 130~300m입니다.

    1996년부터 1998년 발굴조사에서 고구려 시대 유물 2천여 점이 발굴되었으며 저수지와 망대 및 병영 등의 건물터가 남아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 요령성 본계시 환인만족자치현(桓仁满族自治縣)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 수인 집안과 서쪽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한 성곽입니다.

    오녀산(五女山)의 북쪽과 동쪽에 연결되어 있는 높고 낮은 여러 산봉우리 가운데서 가장 높고 험한 800m의 산마루를 중심으로 그 둘레에 축조되어 있습니다.

    오녀산의 서남쪽에는 넓은 환인분지가 있고 동남쪽에는 압록강의 지류인 혼강(渾江)이 있습니다. 오녀산의 서쪽 산기슭에서 시작되는 좁고 험한 골짜기로는 통화(通化)로 통하는 길이 지나갑니다.

    동남쪽에서 흐르는 혼강은 여러 산굽이를 지나 오녀산 기슭에 이르러 깎아내린 듯한 가파로운 벼랑 사이를 통하여 환인분지로 흘러듭니다. 환인에서 고구려의 옛 수도인 집안(集安)으로 가는 데에는 통화로 통하는 육로와 혼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수로가 있었으며, 집안에서 심양 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환런현[桓仁縣]을 거쳐야 했습니다. 이와 같이 오녀산성은 고구려의 수도인 집안과 서쪽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대에 위치하였습니다.

    성돌은 30×20×35㎝의 크기이며, 성벽의 축조공법에는 굽도리축조공법이 남벽에서 확인되었습니다. 굽도리축조공법이란 굽도리를 조성할 때 계단식으로 경사지게 쌓는 방법으로 산성에서는 협곡에 쌓을 때와 높은 성벽을 축조할 때 많이 적용되었습니다. 이 축조방법의 기본은 높은 성벽을 보다 견고하게 하기 위하여 성벽의 굽도리부분을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성돌을 약간씩 뒤로 물려 쌓는 것입니다.

    산성의 동문터에서는 성벽이 서로 엇갈리면서 한쪽 벽이 다른쪽 벽을 모나게 감싸서 옹성(甕城)을 이루었습니다. 이런 형식은 오녀산성과 국내성에서만 보이므로 고구려 옹성으로서는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인 듯합니다.

    성안에는 천지라고 하는 못이 있습니다. 이 못의 물은 마른 일이 없다고 합니다. 못은 동서로 긴 장방형인데 그 크기는 동서의 길이 12m 남북의 너비 5m, 깊이는 2m 정도 된다. 못은 암반을 깎아낸 다음 변두리에 큼직큼직한 막돌을 쌓았으며 지면에 나타나는 부분에만은 네모나게 잘 다듬은 돌을 규모 있게 쌓았습니다.

    못의 북쪽 벽 가운데에는 물이 빠져나가는 구멍을 만들었습니다. 못의 서남 모서리밖에는 이 못과 연결된 조그마한 샘을 팠습니다. 이 샘 역시 못에 쓴 돌과 같은 잘 다듬은 돌로 쌓았습니다.

    광개토대왕릉비에는 추모왕(鄒牟王)이 비류곡(沸流谷)의 홀본(忽本) 서쪽의 산 위에 성을 쌓고 도읍을 정하였다고 하였는데, 이곳 오녀산성이 이 때에 쌓았다는 성으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으나 고고학적인 뒷받침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특징은 전형적인 고구려의 축성법인 굽도리식축조공법이 이용되었다는 점과 고식(古式)의 옹성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