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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한발발이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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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과거시험에도 컨닝이 존재했나요?

조선시대 관직에 오를 수 있는 시험인 과거시험은 티비나 드라마에서 보면 넓은 공간에서 시험을 치르던데, 그럼 컨닝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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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팀을 만들어 컨닝을 하기도 했습니다.

    팀은 3명이상이 한 조가 되어 각자 역할을 분담했는데 선접꾼은 앞자리를 차지하고자 시험장 문이 열리면 달려갔는데, 문제를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맨 앞에 문제를 걸어놓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잘 보이는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선접꾼이 자리를 차지하면 뒤따라 거벽, 사수가 등장했고 거벽은 족집게 과외선생으로 문제를 보고 답을 알려주는 대리응시자, 사수는 거벽의 말을 받아 글씨만 예쁘게 쓰는 필체 전문가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에도 컨닝이 상당했다고 하는데요 대리시험을 봐주는 차술차작, 답안지를 바꿔 제출하는 정권분답, 답안을 미리써서 시험을 치는 외장서입, 시험장 경비들이 응시자에게 답을 알려주는 이졸환면출입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나 현제나 컨닝은 없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무슨방법을 써서라도 컨닝을 하였습니다.

    과거에 합격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인데 컨닝을 하다가 들키면 지금보다 심각한 페널티를 받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