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 잔다르크 동상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프랑스 파리에는 잔다르크의 동상이 있는데 정작 잔다르크를 마녀재판을 통해 처형한 것은 부르고뉴파로 프랑스 파리 시민들이었는데 그들은 이러한 사실에도 잔다르크의 동상을 파리에 두고있는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건가요?
안녕하세요. 정중한해파리168입니다.
15세기 전반에 영국의 백년전쟁 후기에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한 영웅적인 소녀입니다. 1429년의 “프랑스를 구하라”는 신의 음성을 듣고 고향을 떠나 샤를 황태자(뒷날의 샤를 7세)를 도왔습니다.
잔 다르크는 샤를을 격려하고 그에게서 받은 군사를 이끌고 나가, 영국군의 포위 속에서 저항하고 있던 오를레앙 구원에 앞장서서 싸웠다. 영국군을 격파하여 오를레앙을 해방시킨 데 이어 각지에서 영국군을 무찔렀다. 흰 갑주에 흰 옷을 입고 선두에 서서 지휘하는 잔 다르크의 모습만 보고도 영국군은 도망갔다고 전해진다. 이리하여 그 해 5월 상순, 영국군은 오를레앙에서 완전히 패퇴하였다. 랭스까지 진격한 잔 다르크는 이곳 성당에서 전통적인 전례에 따라 샤를 7세의 대관식(戴冠式)을 거행토록 하였다.
이에 샤를 7세는 영국의 헨리 6세에 앞서 왕위를 계승하였는데, 잔 다르크에 대한 왕의 측근들의 질시와 선망 속에서도 잔 다르크는 더욱 충성을 하였다. 1430년 5월 콩피에뉴 전투에서 부르고뉴파 군사에게 사로잡혀 영국군에게 넘겨졌다.
기동전 운영으로 잉글랜드군의 허를 찌르고, 사기가 떨어져 영국군만 보면 도주하던 프랑스군의 사기를 고양시키고 전투를 선두에서 이끌어서 전세를 바꾸어 조국을 구하고, 심지어 일자무식이었음에도 종교 재판에서 당시 평생 신학만 다뤘을 재판관들을 논리로 이겨서, 화형도 억지로 시키게 만들었다. 이 모든 걸 20세도 채 되지 않은 시골 소녀가 이뤄냈다. 오죽했으면 잉글랜드 병사들도 그녀를 성녀라고 믿고, "우리가 성녀를 불태웠다"고 하느님께 용서를 빌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성녀 운운이 현실성을 낮춘다고 볼 수 있으나, 당시로서는 존재 자체가 놀라웠고 여러 가지 설이 오갔어도 일반적인 이해를 넘어섰으니 당사자가 내세운 대로 '하느님의 기적'이라며 퉁치고 넘어가는 것에 가깝다.
1431년, 재판에서 마녀로 낙인 찍혀, 이단(異端) 선고를 받고 루앙에서 화형을 당하였다. 뒤에 샤를 7세는 앞서의 유죄판결을 파기(1456), 명예를 회복시켰고, 가톨릭교회에서는 1920년 그녀를 성녀로 시성(諡聖)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