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강경이 해안도시가 아니면서도 젓갈로 유명한것은 해상과 육상교통의 요충지였기 때문으로 내륙포구를 가진 강경은 충청도는 물론 호남과 경기 지방까지 접근이 쉬웠고 조선시대 말 부터 일제 강점기를 통해 해산물을 비롯한 농산물, 포목 등 도매시장을 형성한 강경은 평양, 대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시장 중 하나였습니다.
천혜의 내륙항으로 일찍이 수운이 발달한 강경포구 덕에 강경은 금강 하구의 관문으로 각종 해산물과 교역물이 들어와 커다란 상권을 형성, 일제 초부터 반세기 동안 성어기에는 하루에 10여척의 배들이 포구에 몰려 생선을 산더미같이 부렸으며 전국 각지에서 상인들이 하루에 2만~3만씩 몰렸습니다.
당시 서해에서 잡은 각종 생선이 모두 이곳으로 모여들자 팔고 남은 물량을 오래 보관하고자 염장법과 수산가공법이 발당, 토굴을 이용한 저장법도 발전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