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교를 창시한 나철은 왜 자결했는가요?
을사조약 체결을 주도한 오적 암살단 자신회을 조직하고, 단군을 궁재하는 대종교를 창시한 나철은 1916년 왜 자결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나철은 조선 말기의 문인이자 대종교의 창시자이며 독립운동가입니다. 나철은 구국운동의 일환으로 민족종교 운동에 주력했으며 1900년 1월5일 한성부에서 대종교를 창시하였습니다. 이후 일제박해를 피해 만주로 옮기게 되었고 이때 서일을 비롯한 대종교인들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1914년에는 본사를 만주로 옮겨 포교활동에 힘썼으며 이에 위협을 느낀 일제는 1915년 10월 종교탄압안을 통해 탄압을 노골화했습니다. 1916년 8월 15일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서 한배검(단군)에게 제천의식을 올린 뒤 순명상조(한배님께 제천하고 대종교를 위하고 한배님을 위하고 인류를 위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16년 8월 15일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서 한배검에게 제천의식을 올린 뒤 순명삼조 한배님께 제천하고 대종교를 위하고, 한배님을 위하고, 인류를 위해 목숨을 끊는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습니다.
대종교 측 주장에 따르면 나철은 폐기법으로 조천했다고 하는데, 이는 스스로 숨을 멈춰 죽는다는 말입니다.
호흡은 대표적인 불수의 작용이고 자기 스스로 호흡을 멈추면 당연히 매우 고통스럽기 때문에 곧이 믿기는 어렵습니다.
종교학자들은 나철이 폐기법으로 조천했는지에 대해 관심은 많으나 사학자들은 폐기법의 진위 여부에 대해 별 관심이 없으며 그때 그가 자결했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제는 단군을 숭배하는 대종교를 탄압하였습니다. 나철은 대종교의 총본산을 옮가고 지속적으로 대종교 공인을 요구했으나 일제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특히 총독부는 1915년 '종교통제안'을 공포하자 나철은 만주로부터 급히 돌아와서 '신교포교규칙'에 따라 신청서를 총독부에 제출하였지만 끝내 허가를 받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는 마지막 수단으로 1916년 8월 15일 구월산 삼성사(三聖祠)에 올라가 자결하였습니다. 그는 김교헌을 온건한 2대 교주로 내세워 일제의 탄압을 피하려 하였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바쳐 대종교에 대한 믿음과 수호 의지를 밝힌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