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있었다는 선잠단은 무엇을 하던 곳인가요?
조선시대에 설치되어 있었다는 선잠단이란 무엇을 하더곳인가요? 선잠단은 국가에서 관리하고 하였다고 하던데 선잠단이란 무엇을 하던 곳인가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릉씨(누에치기를 시작했다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단을 말합니다.
조선 정종 2년(1400)에 서울 동대문 밖에 건립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선잠은 누에치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중국 고대 황제의 비 서릉씨를 잠신으로 하여 누에농사 풍년을 빌었다는데서 유래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선잠은 선잠단 설치 이후 매년 3월 뱀날에 제사를 지냈고 1908년 7월 이후 잠신의 신위를 사직단으로 옮겼습니다.
조선시대 농서를 보면 잠신에 대한 제사는 일반 양잠농가에서도 시행, 제일은 정월 5일이며 잠실의 정남향 쪽에 잠신을 모시고 떡과 차, 향을 갖추어 제사를 지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선잠단지
종 목 사적 제83호
면 적 1,745㎡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서울 성북구 성북동 64-1
시 대 조선시대
누에치기를 처음 했다는 중국 고대 황제의 황비 서릉씨를 누에신(잠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이 단은 조선 성종 2년(1471)에 처음 쌓은 것으로, 앞쪽 끝에 뽕나무를 심어 궁중의 잠실에서 키우는 누에를 먹이게 하였다.
조선시대에 왕비의 소임 중의 하나는 친잠례를 지내는 일이었다. 누에를 키워 고치에서 실을 뽑아 방적하는 일은 중요한 생산이었기 때문이다.세종은 양잠을 크게 장려하여 각 도에 적지(適地)를 골라 뽕나무를 심도록 하는 한편, 한 곳 이상의 잠실을 지어 누에를 키우게 하였다. 그리고 잠사가 생산되면 국가에서 엄밀히 심사하는 것을 제도로 삼았다.
1506년(중종 1)에는 여러 도의 잠실을 서울 근교로 집결하도록 하였다. 현재의 송파구 잠실동 일대는 그런 잠실이 있던 지역이다. 한말까지 이 일대에는 수령이 300∼400년이나 되는 뽕나무가 있었다.
1471년(성종 2)에는 뽕나무가 잘 크고 살찐 고치로 좋은 실을 얻게 하여 달라는 기원을 드리고자 동소문(혜화문) 밖에 선잠단을 지었다. 단에는 대를 모으고 중국 황제의 왕비인 잠신 서릉씨의 신위를 배향하였다. 단의 남쪽에는 1단 낮은 댓돌이 있는데 그 앞쪽 뜰에 상징적인 뽕나무를 심고 궁중의 잠실에서 키우는 누에를 먹이게 하였다.
선잠단의 설치 이후 매년 3월에 제사를 지내다가, 1908년 잠신이 의지할 자리인 신위를 사직단으로 옮기면서 지금은 그 터만이 남게 되었다.
현재는 성북국민학교 옆 길거리에 여러 집들에 둘러싸인 조그만 터전만 남아 있다.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선잠단은 1400년(정종 2)에 설치되었습니다. 규모는 2장3치[二丈三寸]의 크기에 높이는 2척7치[二尺七寸]입니다.
선잠은 누에치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중국 고대 황제(黃帝)의 비 서릉씨(西陵氏)를 잠신(蠶神)으로 하여 누에농사 풍년을 빌었다는 데서 유래합니다. 우리나라에서의 선잠은 선잠단 설치 이후 매년 3월 뱀날[巳日]에 제사를 지냈으며, 1908년 7월 이후에는 잠신의 신위를 사직단으로 옮겼습이다.
한편, 조선시대의 농서를 보면 잠신에 대한 제사는 일반 양잠농가에서도 시행되었습니다. 제일은 정월 5일이며 잠실의 정남향 쪽에 잠신을 모시고 떡과 차(茶), 그리고 향을 갖추어 제사를 지냈습니다. 현재 선잠단은 주위에 선잠단지(先蠶壇址)라 표석을 세워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선잠단> 1963년 1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 왕비의 소임 중의 하나는 친잠례를 지내는 일 이었습니다. 누에를 키워 고치에서 실을 뽑아 방적하는 일은 중요한 생산 이었기 때문 입니다.
세종은 양잠을 크게 장려하여 각도에 적지를 골라 뽕나무를 심도록 하는 한편, 한 곳 이상의 잠실을 지어 누에를 키우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잠사가 생산되면 국가에서 엄밀히 심사하는 것을 제도로 삼았습니다.
현재 송파구 잠실동 일대는 그런 잠실이 있던 지역이었고, 한말까지 이 일대에 수령이 300~400년 이나 되는 뽕나무가 있었습니다. 1471년 성종 때에는 뽕나무가 잘 크고 살 찐 고치로 좋은 실을 얻게 하여 달라는 기원을 그리고자 동소문 밖에 선잠단을 지었습니다. 1908년 융희때 선잠단은 선봉장의 신위와 함께 사직단으로 옮겨 배향되면서 폐허와 되었고 일제강점기에 민유화 되었습니다. 현재는 성북초등학교 옆 길거리에 여러 집들에 둘러싸인 조그만 터전만 남아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선잠단은 조선시대에 세워진 제단인데 누에농사의 풍년을 빌기위해 건립한 제단이라고 합니다.
현재는 터만남아있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선잠단은 누에농사가 잘되도록 풍년을 바라며 빌기 위해 만든 제단입니다.
매년 3월 사일(뱀날:巳日)에 제사를 지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