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버지인 올리버에 비해 리처드는 능숙한 장군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군을 직접 지휘하고자 하여 총사령관이 되고자 했던 고위장교들의 요청을 거절하였는데, 이는 군 장교들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1659년 1월 27일 재정 문제를 포함한 각종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의회가 개회되었는데, 여기서 의회는 올리버 크롬웰의 마지막 2년간의 군사 독재에 심각하게 비판을 가하였고 군의 고위 간부 중 한 명을 탄핵하고자 함으로써 군부에게 큰 반발을 사게 되었다. 군은 의회에 대응하기 위해 평의회를 만들었고, 4월 6일 군 평의회는 의회 측에게 군부에 대항하는 행동에 대해서 설명할 것을 요구하였다. 4월 21일 의회는 이에 대한 답변으로 군 평의회가 호국경의 허락 없이는 열리지 못하게 하고 모든 장교는 의회에 조치에 따를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군은 반란을 일으켜 병력을 세인트 제임스에 집결시켰고, 리처드는 사실상 군부의 통제 속에 있게 되었다. 군의 요청에 의해 리처드는 그날 밤 의회를 해산시켰다. 5월 7일에 재소집된 장기의회와 군부는 리처드의 해임에 동의하였고, 리처드는 자신의 권력 유지 또는 왕국의 부활을 위한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리처드는 결국 5월 25일 공식적으로 사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