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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달한파리매77
활달한파리매7723.04.06

우리나라는 언제 최초로 김밥을 만들어 먹었나요?

문득 저녁으로 김밥을 먹다보니 우리나라에는 언제 부터 김밥을 만들었는지 역사적기록이 되어있는지 궁금합니다. 최초로 김밥을 먹었던 기록이 별도로 있는지도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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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06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일본의 음식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향유되는 김밥의 형태는 노리마키(海苔巻き), 그 중에서도 간토의 '호소마키(細巻き)'보다는 간사이 지방에서 발달한 '후토마키(太巻き)'의 영향을 받아 탄생하였다. 직역하면 각각 노리마키는 '김을 만 것', 호소마키는 '얇게 만 것', 후토마키는 '두껍게 만 것'으로, 일본의 특색 있는 김 요리이다. 이것이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한반도에 소개되었고, 해방 이후 경제 성장기를 거치며 한국의 식문화에 맞게 현지화, 어레인지되어 토속적인 재료와 맛으로 재탄생한 것이 한식의 김밥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일본보다 먼저 판김을 먹었고, 밥이나 다른 곡식을 김에 싸먹는 김쌈도 먹었으나, 대나무발을 이용하여 판김 위에 밥을 깔고 속재료를 넣어 말아 먹는 방식의 시초는 일본이다. 일본의 노리마키는 사각형으로 자른 김 위에 밥을 깐 후 길쭉하게 썬 속재료를 넣고 마키스(巻きす, 김밥말이)를 사용해 원통형으로 말아 만든다. 이는 노리마키의 영향을 받은 김밥의 제조법과도 상동한데, 노리마키가 전래되기 이전 한반도에는 이러한 조리 도구를 이용해 같은 제조법으로 만드는 음식은 존재하지 않았다. 20세기 초 신문기사를 보면 한반도에 노리마키가 전래될 당시의 묘사를 찾아볼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오늘날과 제조법은 같지만 일본김과 조선김을 섞어 쓰며, 오늘날 한국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우메보시를 사용하는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출처: 나무위키 김밥


  • 김밥은 일본음식 김초밥에서 유래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근대 이후에 많이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충무김밥은 1960년대 통영에서 황무지를 터전으로 노점을 하시던 할머니들이 갑오징어를 양념에 절여서 김밥으로 만들어 뱃머리에서 팔기 시작했습니다.



  • 오늘날 한국 김밥의 형태는 간사이 지방에서 발달한 '후토마키(太巻き)'의 영향을 받아 탄생하였습니다.

    이것이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한반도에 소개되었고,

    해방 이후 경제 성장기를 거치며 한국의 식문화에 맞게 현지화, 토속적인 재료와 맛으로 재탄생한 것이

    한식의 김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일본보다 먼저 판김을 먹었고, 밥이나 다른 곡식을 김에 싸먹는 김쌈도 먹었으나,

    대나무발을 이용하여 판김 위에 밥을 깔고 속재료를 넣어 말아 먹는 방식의 시초는 일본입니다.

    동아일보 1958년 3월 29일 기사에 깁밥의 내용이 있으며,

    경향신문의 1976년 4월 14일 기사 「이주일의 요리」에서도 김밥의 내용이 나옵니다.

    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이후 김을 활용해서 만든 다양한 음식이 존재하였고, 김에 관련된 음식문화가 발달하면서 근대에 들어와 김밥이 탄생한 것으로 추축되며 김밥이 일제강점기에 발을 돌돌 말아 만든 일본의 김초밥 [후토마키 (太巻き)]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근거는 아직도 모른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향유되는 김밥의 형태는 노리마키, 그 중 간토의 호소마키 보다 간사이 지방에서 발달한 후토마키의 영향으로 탄생했습니다.

    구한말 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한반도에 소개되었고 해방 이후 경제 성장기를 거치면서 한국의 식문화에 맞게 현지화된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이홍휴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김밥은 삼국유사에 1281 에 김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그이후 우리나라의 고유의 쌈 문화가 있었으므로 그즈음 김을 밥에 싸 먹었을것으로 추론많 ㅏ고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장수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나무위키의 정보를 가져왔습니다.


    조선김은 얇고 구멍이 많아서 1장으로는 김밥을 말기 힘들었다는 점도 정확히 표현되어 있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밥에 식초로 간을 한 부분으로, 노리마키는 스시의 한 종류로도 분류되기 때문이었다.[18] 이러한 조리법은 해방 후에도 유지되어, 김밥을 쌀 때는 밥에 식초를 배합초로 만들어 간을 하였다.


    '김밥'이라는 명칭 역시 '후토마키'가 현지화되면서 한국에 전통적인 김 문화에 비추어 의역, 순화된 표현이다. 상기 기사 내용을 보면 '스시'를 '쌈밥'으로, '노리마키스시'를 '김쌈밥'으로 표현한 것을 볼 수 있다.


    원래 이탈리아 요리인 코톨레타(cotoletta)가 영국으로 전해져 커틀릿(cutlet)으로 현지화되었는데, 이들 유럽의 튀김 음식이 19세기 서양에 개항하여 밀접하게 교류하던 일본으로 상륙,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게 또 다시 현지화된 것이 바로 돈가스(톤카츠)의 시초인 것과도 비슷하다.[19]


    국립국어원에서는 1977년 이후 '노리마키'의 순화어로 '김밥'을 제시해 왔지만#, 원어로 '노리마키(海苔卷)'를 표시하고 있다. 1998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전 일본 문화가 한국 내에서 왜색이라 하여 표면적으로 금기시되고 있었던 상황 탓으로 추정된다.


    동아일보 1958년 3월 29일 기사 「피크닉용 초밥」에서는 쌀 한 되로 밥을 한 후 초 1합, 설탕 1문, 소금 1문, 미미소[20] 약간을 넣는다고 하였다. 오보로(혹은 생선살 보푸라기), 박오가리, 표고, 지진두부, 시금치, 당근, 왜무짠지(다꾸앙) 등을 준비한 후 김에 밥을 놓고 속을 만다고 적혀 있어 상기 1930년의 김밥 제조법과 큰 차이가 없다. 경향신문의 1976년 4월 14일 기사 「이주일의 요리」에서도 밥에 초를 버무려 비비고, 우엉, 계란, 시금치 등을 속으로 준비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1961년 소설 『언젠가 그날(선우휘 작)』에도 화식집(일식집)의 요리사가 생선초밥을 빚고 다시 김밥을 마는 내용이 나온다.# 그 당시의 김밥은 지금의 한국식 김밥보다는 일본식 노리마키에 더 가까운 초밥이었는데, 파는 식당도 오늘날과 같은 분식집이 아니라 일식집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밥에서 식초로 간을 하지 않는 조리법은 1970년대 말에 나온다. 매일경제 1977년 3월 12일 기사의 「봄놀이 채비 야외도시락」의 김밥 조리법에서는 '다진 돼지고기를 볶은 것, 야채 볶은 것을 밥에 섞고 김을 4절로 자른 후 밥을 싼 후 미나리로 묶어 싼다'고 하여 새로운 김밥 조리법을 소개하고 있다. 적어도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초밥의 일종인 노리마키의 조리법 영향이 그대로 전해져 참기름이 아니라 식초를 넣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 식초를 친 밥, 즉 '초반'을 쓰는 경우는 마찬가지로 일본 요리인 유부초밥을 제외하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이질적인 문화라는 것으로 둘 사이의 연관성은 명확해진다.


    김밥에 초반을 쓰는 방식은 1980년대까지는 계속 이어졌는데 이는 그때까지의 김밥의 위상은 일상식이라기보다는 '소풍갈 때 싸가는 특별한 음식' 취급이었기 때문이다. 야외에 도시락으로 싸가는 김밥은 초반을 안 쓰면 경우에 따라 밥이 쉬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초반의 사용은 반 필수에 가까왔다. 초반의 식초 성분이 방부제 역할을 하여, 음식이 상하는걸 막아주기 때문. 애초에 소풍이나 운동회에서 먹기 편한 마끼를 싸가서 먹는 문화 자체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을 통해 전파된 것이다. 이러니 지금처럼 김밥이 대중화 된 데 일본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셈. 이는 하나다 소년사 같은 작품을 통해 접할 수 있다.


    김밥에 넣는 식초는 1980년대를 거치면서 빠진다. 그 이전까지는 김밥은 특별한 음식이라 주로 소풍 전날 집에서 김밥을 만들었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라 보통 한 번 작정하면 온 식구가 먹도록 양을 많이 만들고, 요리책의 일식 레시피 그대로 초밥을 사용해서 쉽게 상하지 않게 하던 것이, 냉장고가 각 가정에 보급되면서 어렵게 굳이 식초를 쓰지 않아도 상하지 않게 보관할 수 있게 됐다. 식당에도 김밥이 '싸고 빠르게 사 먹을수 있는 인스턴트 음식'이 되면서 보존식으로서의 위상은 사라지게 되고, 이에 따라 번거로운 초반 대신 일반적인 밥으로 바뀌고 신 맛은 단무지만으로 대신하게 된 것이다.[21][22] 현대 한국의 김밥과 일본 노리마키를 가르는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이 밥과 단무지, 그리고 참기름의 유무다.[23] 김밥과 그나마 가장 유사한 후토마키의 경우도 거의 달걀 초밥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지단의 비중이 크고, 전문점에서 고급 요리로 취급된다. #


    김밥의 원형대로 초대리와 밥을 섞어 초반을 만들던 레시피는 한국 식문화와 이질적이기에 점차 80년대를 거치며 참깨와 소금, 참기름을 넣고 비빈 밥으로 대체되었고, 이는 지역과 가정의 취향에 따라 달랐다. 게다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중북부 지역은 날씨가 그다지 덥지 않았기 때문에 식초가 안 들어가도 밥이 하루 정도는 버틸 수 있었고, 김밥용으로 가공되어 같이 파는 날 재료를 그대로 쓰는 일이 많은 요즘과 달리 (익히면 아식함이 줄어들며 식초가 들어 있어 상할 걱정이 덜한) 단무지를 제외하고는 들어가는 재료를 전부 한 번 기름에 살짝 볶아서 사용하기도 하였기 때문에[24] 아침에 만들면 점심때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초가 들어가는 것은 상하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식당이나 노점상, 조금씩 생기기 시작한 뷔페식당 쪽 이었으며 그나마 오래 지나지 않아 사라진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시중에 '쥐는 초밥(니기리즈시)'이든 '마키'든 초밥이란 것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을 때이며, 초밥을 먹을 수 있는 일식집(화식집)은 있긴 하였으나 아주 고급 요릿집으로 대중화되기 전이었다. 김밥을 파는 식당도 1980년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밥에 여러 가지 속을 넣고 김으로 말아 싼 음식.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전라남도 광양군 태인도의 토산품으로 김이

    처음 등장한다. 이를 통해 김을 이용해

    밥과 반찬이 될 만한 음식을 싸서 먹는 문화는 조선시대부터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김밥이 처음 만들어진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이미 삼각김밥(삼각죽순이라고도 불립니다)이나 주먹밥 등 비슷한 형태의 음식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김밥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일제강점기 이후인 1930년대부터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극장밥'이라는 이름으로 김밥을 판매하던데, 이것이 극장에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김밥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후에 김밥은 대중음식으로 자리 잡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음식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