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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maan
rogermaan23.04.30

감자가 외국에서 들어온 외래종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감자가 최초로 한국에 전래된 것은 어느 것입니까

감자는 고구마와 더불어 구황작물로 써 우리 민족의 중요한 먹이가 되어 왔는데요 이런 감자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외국에서 들어온 외래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자가 한국에 전해진 것은 어느시기 어떤 이유 때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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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30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서는 북에서 유입되었다고 해서 초기에는 북저라고 불렀다. '감자'라는 단어는 중국 표현 감저(甘藷)에서 유래했다고 추정한다. 한반도 유입 초기에 감저는 감자와 고구마의 통칭으로도 쓰였으며, 이 흔적이 일부 방언에 남았다. 고구마를 단감자, 사탕감자, 호감자, 왜감재, 양감재 등등으로 감자 앞에 접두어를 붙여서 표현한 것이 그 사례이다.

    한국에 전래된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정확한 전파 시기가 적혀있는 고구마와 달리, 감자는 정확한 전래 시기가 적혀 있지 않다. 일단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따르면 1824-5년쯤에 청나라를 통해 전래되었다고 한다. 청나라와 교류하며 조선에 전해졌다는 설도 있고, 청나라 사람들이 조선에 인삼을 도둑질하러 넘어왔을 때 먹고 버티려고 감자를 심어 전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당시 감자가 조세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정에서 금령을 내린 적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함경북도 무산군의 수령 이형재가 감자를 보급하려 할 때도 감자를 심던 사람들이 벌 받을까 봐 시치미를 떼며 씨감자를 주지 않아, 많은 소금과 교환하고 나서야 얻을 수 있었다 한다.

    이렇게 도입되어 감자는 한반도 북방 지역과 강원도 산간까지는 빠르게 전파되었다. 하지만 한반도 남부까지 전해지는 데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했다. 일례로 1832년에 전라북도 지방에 머물렀던 영국인 암허스트 호가 감자 재배법을 알려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서울에서는 1883년 선교사가 처음으로 재배했다.

    이는 추정컨데 이미 18세기에 일본에서 들여온 고구마가 남부 지방에서 널리 보급되어서 감자는 수요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반대로 북부 지방에 감자가 빠르게 전파된 이유도 고구마는 추위에 약해서 추운 북부지역에 별로 전파되지 못해서 대신 감자가 빠르게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 시기 이전에 한반도 지역에서 감자 먹는 영화나 드라마가 있다면 명백한 고증오류이다.

    역사적으로는 이렇고, 2015년 현재 연간 생산량 99만 8460톤(통계청 집계)인 감자의 주 산지는 원산지처럼 고산지대인 강원도(전국 생산량의 35%)가 압도적으로 많고, 경상북도(15%), 충청남도, 경상남도, 충청북도 순서이다. 제주도산 감자가 대형마트에 꽤 들어와 있지만,생산량은 서울이나 광주 같은 대도시를 빼면 전국 최하위권. 그래도 연간생산량 2만 600톤으로 9900톤인 인천보다 2배 이상 많다.

    출처: 나무위키 감자


  • 안녕하세요. 김은경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감자는 안데스 산맥이 원산으로 기원전 3000여년전부터 재배되어 왔으며,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신항로 개척 이후 유럽에 들어왔고 세계로 퍼져나갔다. 우리나라는 19세기 초반 중국을 통해 들어왔다.

    조선시대에서는 감자를 북에서 유입되었다고 해서 북저라고 불렀다. 감자는 감저(甘藷)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감자와 고구마의 통칭으로도 쓰였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감자의 전래시기는 조선왕조실록에 적혀있지 않으며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따르면 1824-5년쯤 청나라를 통해 전래되었다고 합니다.

    청나라와 교류하며 조선에 전해졌다는 설, 청나라 사람들이 조선에 인삼을 도둑질하러 넘어왔을 때 먹고 버티려고 감자를 심어 전래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