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방과 교정도감의 차이점은?.
안녕하세요 고려 무신정권시대때 행정권력기구가 중방과 교정도감이 있었다고 알고있는데요 두 기구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방은 고려시대에 군사적인 문제를 논의하는 회의체였으며, 교정도감은 고려시대에 국가의 중요한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방은 고려 시대 중앙군에 해당하는 2군6위의 지휘관인 상장군과 대장군으로 구성된 회의기관입니다. 1170년 무신 정변 이후 정중부, 이의방, 이고 등 정변의 주도 세력은 중방에서 주요 안건을 의결하는 최고 기관 역할을 하였습니다.
교정도감은 1209년(희종 5) 4월, 최충헌(崔忠獻) 부자의 살해를 모의한 청교역(靑郊驛 : 경기도 개풍군)의 역리와 승도 등을 수색 · 처벌하기 위해 영은관(迎恩館 : 개성흥국사 남쪽)에 설치했던 임시기구로 설치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수장으로 교정별감이 되어 반대세력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서무를 관장하고 모든 지시와 명령을 내리는 등 국정 총괄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장세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 중방은 2군 6위의 상장군 및 대장군이 모여 회의하는 합좌기구입니다. 무신집권기 초반에 중방은 무신 집정들이 국정을 운영할 때 활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중방이 있었다는 것은 결국 무신집권자 개인이 다른 세력에 견제 받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의방이 정중부에게, 정중부가 경대승에게, 이의민이 최충헌에게 제거되는 모습은 그들의 권력기반이 상당히 취약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중방의 장군들이 이러한 쿠데타를 묵인했기에 정권의 교체가 이뤄졌을 테니까요.
반면 교정도감은 무신집권자 개인의 권력이 한층 강화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교정도감은 고려 희종 5년인 1209년에 최충헌이 설치한 것으로, 최충헌을 살해하려고 청교역의 역리와 승려들이 모의한 사건이 발각된데서 비롯됩니다.
최충헌은 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자 교정도감을 설치하였습니다. 본래 도감은 임시 관청에 붙습니다. 따라서 그 역할이 다하면 사라져야 함에도 교정도감은 무신집권기 끝까지 존속했습니다.
즉, 기존에 있던 국가조직이 아닌 별개의 조직을 만들고, 그 기구의 최고직인 교정별감에 취임하여(형식상 왕의 임명을 받지만) 국가의 모든 일을 홀로 좌우한데서 합좌기구인 중방과는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방은 상징군, 대장군 등의 무신들로 만 의 회의기구로 무신정권이 수립되면서 최고 권력기구화가 되었고
최충헌은 자신의 독점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별도의 기구인 교정도감을 설치하게 됩니다.
권력의 중심기구가 중방에서 교정도감으로 이동한 것으로 최충의 권력중심이 차이 입니다.
안녕하세요. 경제·금융전문가 조유성 AFPK 입니다.
✅️ 중방은 최씨 무신정권 이전 무신들의 회의기구였고, 교정도감은 최씨 무신정권 수립 이후 최충헌이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만든 권력기관의 일종이라 볼 수 있습니다. 즉, 둘 다 무신들이 자기 자신들의 정권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만든 기구라는 점은 동일한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