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량과랑 위훈삭제를 중심으로 개혁을 했었지요.
중종때 등용되어 성리학을 바탕으로 개혁정치를 펼쳤는데
가장대표적인게 현량과라는 제도였습니다
이게 도덕성 높은 인재를 뽑는 시험이었지요
기존 과거시험이랑은 달리 지방 선비들의 추천을 받아서 관리를 뽑았는데
이렇게 하면 훌륭한 인재들이 많이 등용될거라고 생각했나봐요
그리고 공신들의 위훈을 삭제하자고 했는데 이게 메가톤급 파격이었죠
연산군을 몰아내고 중종을 옹립한 공신들의 공적을 없애자고 한거거든요
사림들은 공신들이 너무 특권을 누린다고 생각했던거에요
그외에도 소격서를 폐지하자고 했는데 이건 도교 제사 지내는 관청이었어요
성리학자였던 조광조는 도교 제사가 백성들 세금 낭비라고 생각했거든요
향약도 보급하면서 향촌 교화에도 힘썼는데 이게 지방 양반들한테 좋은 반응을 얻었죠
근데 이런 급진적인 개혁이 기득권층의 반발을 샀고 결국 기묘사화가 일어났어요
조광조는 사약을 받고 돌아가셨는데 그의 개혁 정신은 후대 사림들에게 이어졌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