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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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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루이스호 사건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코델 헐은 UN을 설립하는데 기여한 공이 크고, 국제 무역의 상호무역협정안 때문에 노벨 평화상을 받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근데 세인트 루이스호 사건 때문에 노벨 평화상 수상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는데 이 사건은 무슨 사건이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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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

    세인트 루이스호는 약 937명의 유대인 승객을 태우고 쿠바로 항해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나치 독일에서 탈출해 안전한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쿠바 비자를 소지하고 있었고, 쿠바는 유대인 난민들을 수용할 가능성이 있는 나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쿠바의 정치적 상황이 갑작스럽게 변하면서 그들의 운명은 점점 불확실해졌습니다.

    쿠바에서의 입국 거부

    1939년 5월 27일, 세인트 루이스호는 쿠바의 하바나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쿠바 정부는 난민들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쿠바 내에서는 이미 경제적 불안과 정치적 갈등이 고조되어 있었으며, 많은 국민들은 대규모 난민 수용에 대해 반대했습니다. 특히 쿠바의 대통령은 난민들에게 발급된 비자를 무효화시키고, 그들을 입국시키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는 난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그들은 배 위에서 무력하게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의 입국 거부

    세인트 루이스호의 승객들은 쿠바에서 거부당한 후, 미국으로 향하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플로리다 해안으로 이동하며 미국 정부가 자신들을 받아줄 것을 희망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D. 루즈벨트는 이들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미국은 대공황의 여파로 인해 사회적, 경제적 불안이 높았으며, 반유대주의 정서 또한 확산되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미국 정부는 세인트 루이스호 난민들의 입국을 거부했고, 캐나다 또한 난민들의 입국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유럽으로의 귀환과 비극적인 결말

    세인트 루이스호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모두 거절당한 후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선박은 결국 영국,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에서 난민들을 분산하여 받아들였지만, 나치 독일이 유럽을 침공하면서 그곳에 정착한 많은 난민들이 결국 다시 박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약 250명 이상의 승객이 나치의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고, 세인트 루이스호 사건은 유대인 난민들의 비극적인 운명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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