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는 왜 신뢰성이 떨어지는 사료로 보는것인가요?
대표적으로 삼국유사는 신뢰성이 떨어지는 사료라고 하던데요.
그렇다면 왜 삼국유사는 신뢰성이 떨어지는 사료로 보는것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유사는 고려 후기 승려인 일연이 고조선부터 후삼국까지의 유사를 모아 편찬한 역사서로 개인이 객관적인 증거없이 주관적으로 작성하였기때문에 그렇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유사는 몽골 제국과이ㅡ 전쟁 이후 저술된 책이므로 삼국사기에 비해 자주적인 내용을 많이 실었다는 인식이 있고, 신채호 또한 이를 아류라고 비판, 삼국유사가 단군신화에 나오는 신을 중국의 제석등으로 묘사한 것과 불교사상에 의거해 여성을 짐승의 화신이라 비하한 것, 신두수->진단, 환국->환인 등 우리 고래의 사서에 기록된 우리 전통의 문구들을 불교 용어로 바꾸거나 단군이 1048년 살았고 1908세까지 수를 누렸느니 라고 기록한 것들에 대해 비판합니다. 단군은 허상이 아닌 한국사에 실제 인물인데 승려인 일연이 단군을 종교적으로 막연한 숭배대상이나 신화적 허구의 대상으로 추락시켰다는 이유입니다.
또 저자가 승려이므로 불교에 편향적이고 도교와 유교를 낮게 보는 내용이 많기 때문입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시대의 일연의 삼국 유사는 정사가 아니기 때문 입니다. 정사란 국가가 주도 하에 공식적으로 사관에 의해서 쓰여진 역사서 입니다. 예를 들어 김부식의 삼국 사기, 조선왕조 실록 등은 정사 이기에 그 역사성을 인정 받지만 삼국 유사는 일연이라는 개인이 주관성을 가지고 쓴 사서 이기에 가치를 덜 인정 받는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