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봉 선생은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중앙고보, 신흥무관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1919년 만주 길림에서 의열단을 조직했습니다. 특히 신채호의 조선혁명사상을 바탕으로 폭력 투쟁을 통한 민중 직접 혁명을 도모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 폭력 투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중국 황포군관학교에 입학하여 군사 교육을 배우고, 직접 1932년 난징에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세워 인재를 양성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1938년 조선의용대를 조직했습니다. 또한 통일 전선을 위해 민족혁명당을 조직하여 일제에 맞섰습니다. 그의 항일 투쟁에제는 현상금 100만원(현재 300억원) 가량을 내걸고 체포하려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해방 이후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사회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던 그는 남한내의 우익 세력의 테러에서 벗어나려고 월북하여 북한에서 고위직으로 지냈으나 김일성의 독재 과정에서 숙청되었습니다.
그는 뛰어난 항일 독립 운동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남한에서 평가가 높지 않은 것은 해방 이후 사회주의저 행보와 월북, 그리고 북한에서 활동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