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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센때까치29
굳센때까치2923.06.09

역사를 기록한 사관의 일과가 궁금합니다.

왕의 업무나 왕의 모든 말을 남긴 사관은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됐나요? 왕보다 먼저 일어나고 늦게 잠에 들었을까요? 그리고 그런 사관은 교대근무를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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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의 사관은 사관(예문춘추관 또는 춘추관)에 상사(常仕:매일 근무)하면서 궁중에 입직(늦어도 고종 4년 이전)하여, ① 국왕의 언동을 기록(늦어도 의종 11년 이전)하고, ② 견문한 바의 국왕의 언동과 국가 전반에 걸친 정사 및 백관의 시비득실을 토대로 견문사와 논평을 곁들인 사초를 작성하고, ③ 관내에 보관된 실록과 각종 문적(文籍)을 보관, 관리하며, ④ 지방 사고(史庫)에 보관된 문적의 포쇄(曝曬:볕에 말려 습기를 없앰) 등을 담당하였습니다.


    조선시대의 사관은 봉교의 지휘하에 승정원 · 춘추관에 입직하고(검열 4인이 2교대로 각 1인) 춘추관에 상사(常仕 :입직하는 검열 이외의 봉교 · 대교 · 검열 2인)하면서 항례로 국사가 논의되는 조회(朝會) · 조참(朝參) · 상참(常參) · 윤대(輪對), 경연 · 중신회의 · 백관회의 · 의정부 · 중추원 · 육조 등의 대신이나 삼사 관원이 국왕을 면대하는 장소, 국왕의 각종 행차 등에 입시 ·호종하였습니다.

    그리하여 ① 국왕의 언동, ② 대신 · 삼사 관원 등이 논의한 제반정사, ③ 중앙과 지방의 각 관아 · 관원이 국왕이나 의정부 · 육조에 보고한 정사, ④ 각종 견문사 · 비밀사 · 정치득실 · 백관의 인물평 등을 모두 기록하였습니다. 또 수찬관 이하가 제출한 사초를 종합하여 춘추관시정기(春秋館時政記, 시정기)를 찬술하였고, 실록청(實錄廳)의 기사관으로서 실록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춘추관과 외방사고에 보관된 문적을 포쇄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