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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의 말똥구리
땅속의 말똥구리24.01.15

어린이날이 생긴 역사적 배경이 궁금합니다

우리나라의 5월5일은 어린이날로 공식적으로 인정된 공휴일인데요.

방정환선생님께서 공헌을 많이했다고 하는데

어린이날이 생긴 역사적 배경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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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6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20년 방정환이 어린 아동들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직접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919년의 3.1독립운동을 계기로 어린이들에게 민족정신을 고취하고자, 1923년 방정환을 포함한 일본유학생 모임인 '색동회'가 주축이 되어 어린이날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4.01.15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어린이날이 생겨난 역사적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하군요.

    우리나라에서 어린이날이라는 이름을 걸고 5월 5일을 기념하기 시작한 최초의 해는 1923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천도교 3대 교주 손병희의 사위이기도 한 방정환이 어린이의 고유 문화와 예술 활동을 진작시키며,

    어린이의 인권의식을 기를 목적으로 1922년 3월 16일 동경에서 색동회를 조직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23년 어린이날 선언의 직접적인 배경이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염민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22년 5월 1일 천도교 소년회가 창립 1주년을 기념하여 경성 시내에서 어린이날 가두 선전을 한 것이 어린이날의 기원입니다.

    이후 1945년 광복 이후 이 어린이날을 5월 5일로 지정하여 행사를 진행하였고

    1975년부터 공휴일로 제정하였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답변자에게 힘이되는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어린이날 탄생 이전 어린이라는 말이 없었고, 애기 , 애새끼, 어린것, 아이들, 애, 애들 등 으로 불렸습니다.

    의무교육이 시행되지 않았고 교육의 혜택을 받는 어린이도 많지 않았으며 대개 어린이들은 그저 어른의 축소판으로만 취급되어 아주 어릴때 최소한의 돌봄을 받은 후 곧바로 농사일을 하러 나가거나 도시로 나가 공장에서 일을 했습니다.

    방정환이 생각하는 어린이는 티없이 맑고 순수하며 마음껏 뛰놀고 걱정 없이 지내는 모습이었으나 일제강점기 조선의 현실에서 어린이들이 그런 이상에 다다르는 것은 불가능했기때문에 현실이 가혹할지라도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자 관련 운동을 많이 벌였는데 그 일환으로 어린이 날이 만들어졌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어린이날은 어른으로부터 아이들 애 애들 계집애로 불리던 어린이의 존엄성과 지위향상을 위하면서 어린이들이 올바르고 슬기로우며 씩씩하게 자라도록 하고 어린이에 대한 애호 사상을 앙양하기 위해 정한 날입니다. 1919년 3.1절을 계기로 소년회가 결성되었고 1921년 방정환 김기전 등에 의해 천도교 소년회가 결성되었고 1922년 5월 1일 창립 1주년을 기념하여 가두 선전을 한 것이 어린이날의 역사적 유래입니다. 1927년 5월 첫째 일요일로 바뀌고 1938년 중단되었다가 1945년 해방 이후 어린이를 존중하고 위한다는 마음에서 1946년 5월 5일 부활되었습니다. 1961년 제정ㆍ공포된 아동복지법에서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정하였습니다. 1973년에는 기념일로 지정되었다가 1975년 공휴일로 지정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장수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어린이’라는 말은 1920년대 들어 방정환이 정착시키면서 널리 쓰이기 시작했고 방정환은 아동문학가로서 우리나라 첫 아동 잡지 『어린이』를 발간하고 어린이 단체도 만들었습니다.


    동화를 재미있게 들려주는 것으로도 유명해서 지방마다 돌아다니며 어린이들에게 동화를 들려 주었다고 합니다.


    그가 어린이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천도교의 영향이고 천도교는 ‘어린이’를 새롭게 정의하고 어린이운동을 전개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천도교의 사상 속에서 어린이의 인권에 대한 요구가 가능해졌습니다.


    천도교에서는 아이를 때리는 것은 곧 한울님을 때리는 것이므로 아이를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방정환은 천도교를 믿는 사람이었고, 이런 생각에 뜻을 같이했습니다.


    방정환이 생각한 ‘어린이’는 티 없이 맑고 순수하며 마음껏 뛰놀고 걱정 없이 지내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암울한 삶을 살아가던 시기였고 그때 어린이들의 실제 모습은 방정환이 생각한 것과 많이 달랐습니다.


    그때에는 의무교육이 시행되지도 않았고 교육을 받는 어린이도 많지 않았고 대개의 어린이들은 농사일을 하거나 도시로 나가 공장에서 일을 했었습니다.


    비록 현실이 가혹할지라도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 어린이날이 만들어졌습니다.


    천도교소년회는 1922년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선포했고 1923년 5월 1일 첫 어린이날 행사가 천도교당에서 열렸습니다.


    기념식 뒤 200명의 소년들이 경성 시내를 4구역으로 나누어 집집마다 아래와 같은 선언문 12만 장을 배포했고 그 뒤 어린이날은 전국에서 열리는 기념행사로 발전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