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부처님의 소년, 청소년 시절은 어땠나요?
석가모니 부처님은 태어나고서 7걸음을 걷고 난 후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쳤다는 건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그 이후 소년, 청소년 시절에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싯다르타는 일곱 살 때에 5백여 명의 샤카족 귀족 집안의 자제들과 함께 처음으로 박사 비사밀다(비슈바미트라)를 스승으로 브라흐미 문자와 카로슈티 문자를 배웠고, 이듬해부터 외삼촌 크샨티데바[34]에게서 칼과 활, 창과 방패 등의 무기 사용법과 각종 무술, 코끼리와 말 등을 잘 기르고 조련하는 기술, 수레와 마차 타는 법, 군사 지휘, 연설로 상대 제압하기 등의 무예를 배웠다고 한다. 불전에는 싯다르타 태자의 어렸을 때의 모습에 대한 일화들이 실려 있는데, 그 일화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물론 다 믿기는 곤란하고 은유가 가미된 설화로써 이해해야 한다).
귀족 소년들끼리 모여서 힘겨루기 경기를 하는데, 아침 데바닷타가 성에서 나가려는데 길 한복판에 아름답게 장식된 우람한 코끼리가 있는 것을 본 데바닷타가 누구 것이냐고 물어보고, 싯다르타 태자가 타고 갈 코끼리라는 말에 왼손으로 코끼리의 코를 잡고 오른손으로 이마를 후려쳐서 코끼리는 그만 죽어버렸다. 하필 코끼리가 성문 앞에 서있다가 데바닷타에게 그런 꼴을 당했으니 성문이 거의 막혀서 사람들이 지나다니기 어려워 했는데, 얼마 뒤에 그곳을 지나던 난다가 코끼리의 꼬리를 잡아당겨서 일곱 걸음쯤 옆으로 옮겨두었고, 그 다음으로 싯다르타가 와서 왼손으로 코끼리를 들어올려 오른손으로 허공으로 던졌고, 코끼리는 일곱 겹 성벽과 일곱 겹 도랑을 뛰어넘어 땅에 떨어졌다. 사람들은 이후 그곳을 '코끼리 구덩이'라고 불렀다.
귀족 소년들의 힘겨루기 경기 중에 쇠북을 줄지어 늘어놓고 그것을 과녁으로 삼아 활을 쏘는 종목이 있었는데, 참가한 소년들이 돌아가며 활을 쏘는데 싯다르타의 차례가 되자 과녁을 더 멀리 두고 그 뒤에 쇠로 만든 멧돼지 조각 일곱 개와 쇠로 만든 타라나무 조각 일곱 개를 줄 지어 세워놓았다. 싯다르타가 활을 쏘려는데 활대와 시위가 그만 한꺼번에 부러져버렸고(!) 태자가 좀 더 튼튼한 활을 요구하자 경기를 보던 부왕 숫도다나가 천묘에 가서 그곳에 있던 사자협왕의 활을 가져 오게 했다. 사자협왕은 정반왕의 아버지이자 싯다르타의 할아버지로 생전 샤카족 가운데서도 용맹한 전사이자 활의 명수로 손꼽히던 인물이었는데 그의 활은 너무 강력해서 사람들이 당기기조차 어려워, 천묘에 모셔놓고 꽃과 향으로 공양하고 있을 뿐이었다. 경기에 참가한 귀족 소년들은 물론, 장성한 성인이었던 대신 마하나만조차 활시위를 당기지 못하고 싯다르타 태자에게 넘겨 주었는데, 태자는 앉아서 몸도 움직이지 않은 채 왼손으로 활채를 잡고 오른손으로 활시위를 잡아당겨 줄지어 놓여 있던 쇠북을 꿰뚫었고, 다시 쏜 화살은 쇠로 만든 멧돼지상과 나무를 모두 꿰뚫고 땅속에 깊이 박혀서 그 자리에서 샘물이 솟아났다. 이후 사람들은 그 샘물을 '화살 우물'이라 불렀다.
와타나베 쇼코는 이런 류의 경기대회가 이따금 열렸다는 것은 그때의 일반 사정으로 보아도 짐작할 만한 일이지만, 남들은 당길 수 없는 활을 쏘았다거나 화살이 박힌 곳에서 샘물이 솟았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싯다르타만이 아니어도 세계 각지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영웅 전설의 테마이며, 어린 싯다르타가 앉은 자리에서 활을 쏘아 보이는 것은 훗날 석가모니가 마왕 마라 파피야스를 항복시키고 위없는 깨달음을 얻는 모습과 동일한 사고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석가모니 부처는 처음부터 붓다였다', '석가모니 부처는 오래 전부터 이미 붓다였다'는 말과 같은 발상의 전설이라고 지적하고, 또한 설화에서 태자의 경쟁 상대로 으레 데바닷타와 난다가 나오는 것도 실제로 그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선인과 악인의 대비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싯다르타의 나이 열두 살이 되던 2월 8일에 사해의 물을 태자의 정수리에 붓고 칠보로 만든 도장을 맡기는 책봉 의식을 치르고 숫도다나 왕의 태자로 정식 책봉되었다(《불설중허마하제경》). 싯다르타가 태자로 책봉된 해에 카필라 왕국에서는 농경제 파종식을 거행했는데, 그런데 본생경과 불본행집경에는 이때 싯다르타 태자는 이 농경제 의식에서 싯다르타는 신분의 고하와 생사의 먹이사슬이라는 것을 목격하였다. 특히 생물이 남을 멸했으나 그 생물 역시 불멸을 얻지 못함을 보고 전전(展轉), 돌고 도는 생사의 허망함을 느끼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출처: 나무위키 석가모니/일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