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광산은 일본 에도 시대에 금맥이 발견되어 금광으로 유명했으며,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적 채굴 기술이 도입되었습니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 당시 군수 자원을 생산하고,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약 1,500명의 조선인들이 사도 광산으로 강제 동원되었습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사도 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강제 노동 역사를 배제하려 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를 반대하며, 강제 노동 역사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었습니다.
그런데, 당초 반대 취지와 다르게 최근 한국 정부는 일본의 강제 징용 사실 배제 상태로 세계 유산 등재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여 여론의 뭍매를 맞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