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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23.03.24

고종의 정관헌은 무엇을 하던 곳인가요?

고종때의 정관헌은 무엇을 하던 곳인가요?

고종이 커피를 마시곤 했다는데 이 말은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그렇다면 정관헌의 존재는 무엇을 하던 곳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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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6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3.25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정관헌은 너른 홀 뒤편에는 벽돌조의 건물을 지었는데 연회를 베풀 때 다과 등 음식 등을 준비하던 곳으로 추정됩니다. 정면 7간 측면 5간 규모로 팔작지붕 모양을 본뜬 양식 지붕을 얹고 있습니다.

    함녕전 뒤편의 화계를 정원 삼아 위치한 건물이 바로 정관헌입니다. 이름 그대로 덕수궁 일대를 ’조용히 내려다 보고(靜觀)’있는 셈입니다.

    1900년 건립된 정관헌은 러시아 건축기사인 사바틴(sabatine)이 설계한 건물이다. 사바틴은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 당시 경복궁에 머물던 중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목격하고 이를 국제사회에 널리 알린 인물이기도 하다.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서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할 무렵 몇 채의 서양식 건물을 궁내에 지었는데 정관헌은 그 당시 건립된 초기 서양식 건물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기도 하다.

    이곳 정관헌 용도는 고종의 연유처(宴遊處)로 외빈을 초대해 연회를 열거나 고종황제가 다과를 들며 음악을 감상하던 휴식처로 쓰였다고 한다.

    광무4년(1900) 경운궁 선원전의 화재로 태조의 영정을 이곳에 잠시 봉안하면서 경운당(慶運堂)이란 명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또한 1906년 흠문각(欽文閣)에서 고종의 어진(御眞)과 계명재(繼明齊)에서 순종의 어진을 잠시 이 건물에 봉안하기도 했다. 해방 이후 한때 덕수궁을 찾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차와 음료를 팔던 ’카페’로 운영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 건물의 가장 큰 특징은 서양식 건축양식에 전통적인 의장(儀裝)이 절충된 외관이라 할 수 있다. 내부기둥은 인조석으로 둔중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주두를 바깥기둥은 목재로 화려한 코린트 양식 주두(柱頭)를 얹고 있다. 또한 바깥 기둥에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오얏꽃(李花) 문양을 양각하였고 소나무 사슴 박쥐 당초문 등을 투각한 난간을 설치하였다. 전통적인 문양(文樣)을 가미한 서양식 테라스를 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정관헌 [靜觀軒] (문화원형백과 사진으로보는 한국전통건축, 2002.,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 안녕하세요. 김보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관헌은 커피를 마시는곳이라는것도 맞을수도 있습니다.

    고종이 쉴수 있었던 곳이였기 때문이죠..

    정관헌은 1902년에 덕수궁내에 세워진곳이였고 태조의 어진을 봉안하던곳이 목적이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차재우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고종시대 왕실의 휴식공간이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정관헌은 동서양의 건축양식을 모두 마주할 수 있는 전각으로 팔작지붕의 동양식 지붕, 다른 건물 부분은 서양식의 문양이 조각되어 있고

    기둥과 난간도 서양식입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이름 그대로 덕수궁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다. 고종황제가

    다과를 들며 음악을 감상하던 휴게소로 세워졌고 이후 태조, 고종, 순종의

    초상화와 사진을 보관했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관헌(靜觀軒)은 덕수궁의 서양식 정자입니다. 동양적인 요소가 가미된 서양식으로 1900년경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건립 년도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아관 파천후 후 1897년에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할 무렵 몇 채의 서양식 건물을 궁내에 지었는데, 정관헌은 그 당시 건립된 초기 서양식 건물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기도 합니다. 고종이 손님을 접대하거나 다과를 나누던 장소 라고 하네요.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정관헌(正管軒)은 조선 시대에 왕실의 일부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주로 관리나 사무 처리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곳이었습니다.

    고종 때에는 정관헌이 왕궁 내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이는 국가의 중요한 사안을 다루는 권한이 있었고, 정치적인 결정을 내리기 위해 고위 관료들이 모이는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고종이 커피를 마시는 일은 역사적인 사실이 아닙니다. 커피는 당시 조선에 들어온 상품 중 하나였지만, 그 당시에는 왕실에서는 차를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따라서, 고종이 커피를 마시는 일은 미심쩍은 설화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