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막부시절 우산국은 조선땅이니 가지말라고 한 배경이 무엇인가요?
에도막부시절에 정부내에서 우산국은 조선땅이니 가지말라고 언급한기록이 있는데요
그렇다면 당시 왜 직접적으로 그런언급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에서 송도(독도)까지의 거리가 80~90리(里), 송도에서 죽도(울릉도)까지의 거리는 40리이며, 오키 섬에서 송도까지는 80리라고 밝혔고 울릉도 쟁계로 조선과 일본이 죽도(울릉도)에 관한 논쟁이 벌어졌을 때 에도 막부는 돗토리 번 답변서에 근거하여 1696년 1월 도해 금지령을 내려 일본 어민들이 울릉도와 독도에 드나드는 것을 금지시켰습니다. 도해 금지령이란 일본 어민이 죽도로 물고기 잡으러 가는 것을 막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문서를 통해 일본 정부는 죽도(울릉도)와 송도(독도)가 조선의 영토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과 일본 어민들이 죽도(울릉도)에 드나드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안용복은 1693년과 1696년 두차례에 걸쳐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임을 주장한 인물입니다.
1693년 1차 도일은 울릉도 어로 중 납치 당한 사건과 관련있습니다. 납치되었지만 안용복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영토라 주장하자 이들을 구금한 요나고 관리는 에도(도쿄의 옛이름)에 있던 돗토리 번주(藩主)를 통해 안용복의 처리를 막부(幕府)에 문의하였습니다. 이때 돗토리 번은 조선 어민이 울릉도에 오지 못하게 해달라는 청을 에도 막부에 요구하였습니다. 막부는 안용복과 박어둔을 나가사키로 보내 조사한 뒤 쓰시마를 거쳐 조선으로 돌려보내도록 지시하는 한편, 조선인 출어 금지를 요청하는 서계(書契)를 조선 정부에 보내도록 명했습니다. 이때부터 두 나라 사이에 울릉도와 독도를 두고 서로 자국의 땅이라고 주장하며 영유권을 다투는 일이 계속되었습니다. (1694~95년)
그간 에도 막부는 울릉도와 독도가 돗토리 번에 속하는지를 질문하였습니다. 결국 울릉도와 독도를 둘러싸고 2년이 넘는 조사와 논쟁 끝에 일본 에도 막부는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일본 어민들로 하여금 울릉도에 가지 못하도록 하는 ' 죽도(竹島 : 울릉도) 도해금지령 '을 내렸습니다. (1696.1)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독도에 대한 일본 각료들의 망언은 해마다 두더지 튀어나오듯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고려시대부터 우산국은 우리나라에 복속되었으며 조선시대에도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1600년대에 일본 돗토리번의 오야 무라카와 가문의 어부들은 울릉도와 독도 부근에서 어업을 해왔으며 오야 가문은 독도를 울릉도에 속한 섬으로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들 가문은 1693년 울릉도에서 조선인 어부 안용복을 납치해 일본으로 데려가지만 에도 막부를 상대로 한 안용복의 담판으로 1969년 일본 막부에서 도해금지 명령을 내려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어업을 중단시켰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