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핫뉴스실시간 인기검색어
아핫뉴스 화산 이미지
아하

학문

역사

단팥소보로크림빵
단팥소보로크림빵

이중섭화가가 왜 제주도에서 생활하였나요?

황소로 유명한 화가 이중섭은 평안도가 즉 이북출신인데 왜 제주도에서 생활을 하였나요? 생활도 어럽고 힘든생활을 하였다는데 이유가 무엇인가요?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50년 6. 25. 어느덧 원산 부두는 남으로 탈출하려는 피난민들과 후퇴하려 장병들에 의해 아수라장이 되었고 부모를 남겨 두고 처자와 조카를 데리고 월남길에 오른 이중섭 역시 우왕좌왕하는 피난민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부산에 도착한 중섭은 가족은 적기에 있는 피난민 수용소에 수용되었습니다. 대부분 피난민들과 같이 이중섭은 떠도는 거렁뱅이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고 이중섭은 몇 달을 부산에 머문 뒤 제주도로 떠났습니다. 아마도 부산의 아우성 속에서 벗어나 안정되 분위기 속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였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도시보다는 시골 생활이 여우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곁들어 졌을것이고거기다 따스한 남쪽 지방으로 때묻지 않은 원생의 풍속이 그의 동경을 자극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선 피난민들의 아우성 속에서 떠밀리는 군중 속에서 그림은 커녕 제대로 생활도 할 수 없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했고, 부산으로 피난을 오나 생계가 막막했습니다.

      1951년 1월 15일 정부의 수용피란민 소개정책으로 조카 이영진이 있어 연고가 있다는 제주도로 보내지나, 제주도에 특별한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어디에 머물지 정하지 못하다 어떤 노인이 서귀포가 좋다고 하는 말을 듣고 멸날을 걸어 서귀포의 알자리 동산 마을에 도착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중섭은 아내와

      두아들과 함께 원산항에서 화물선을 통해

      부산에 잠시 머물다가 조카가 있는

      제주도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