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치마바위 이야기는 어떤 야사에 기록된 것인가요?
중종이 폐위된 중전 신씨를 그리워하여 신씨가 거처하고 있는 방향인 인왕산을 자주 바라보고,
신씨는 인왕산에 평소 즐겨입던 붉은 치마를 펼쳐 놓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인왕산에 이 치마를 펼쳐놓은 곳을 치마바위라고 한다고 합니다.
정사에는 실리지 않은 이야기고, 야사로 전해진다고 하는데 어디에 기록된 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동각잡기]는 고려 후기부터 조선 선조 때까지 정치와 명신들의 행적을 기록한 야사집이자 역사서 인데 이 기록에 중종과 치마 바위에 관한 야사가 전해 진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상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종 재위 중에 새 왕비들(장경왕후, 문정왕후)을 차례로 맞았지만, 중종은 조강지처 신씨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치마바위의 전설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야기 속 중종은 틈만 나면 궁궐 누각에 올라 인왕산을 바라보며 아내를 떠올렸다. 이 소식을 들은 그녀는 산 중턱에 우뚝 솟은 바위에다 자신의 붉은 치마를 펼쳐 화답하였다. 궁궐에서 나온 신씨는 잠시 딴 곳에 머물다가 인왕산 아래 사직골의 본가로 돌아갔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사직동에도 또 다른 치마바위가 있다.) 중종이 정말 조강지처를 그리워했는지는 모르지만 계속 관심을 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녀의 집에 도둑이 들어 경비인원을 늘리는 등의 일화가 실록에 등장한다. 전설이 괜히 나도는 게 아니다. 이런 작은 단서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민간의 생각과 정서가 더해져서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종반정으로 역적이 된 신수근의 딸인 조강지처 신씨 부인을 궁으로 데리고 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조강지처 신씨를 지척에 두고도 신씨가 죽을 때까지 궁으로 부르지 못한 채 생이별을 하고 말았다. 신씨가 중종이 궁궐에서 자기 치마라도 볼 수 있도록 인왕산에 자기가 입었던 치마를 항상 걸어 놨다는 애뜻한 인왕산 치마바위 전설만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