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절약하는 생활을 강조했던 정약용도 아들한테 보내 편지에 너희들은 무조건 한양 10리 근처에 살도록 아부지가 어떻게 하겠다고 보낸 편지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양에 모여 살다보니 집값이 상당히 비쌌는데 집한채가 면포10동 지금으로치면 10억정도였다고하니 조선시대 한양 집 값도 만만치 않았다는것을 알 수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한양과 지방의 집값 차이는 컸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조선 후기 지방의 경우 1천냥이 넘는 집이 아주 드문 반면에 한양에는 가장 비싼 집이 2만냥에 거래될 정도였다고합니다. 한양 집값이 올라가자 지방에서 올라온 군병 등은 한성부에서 주택을 마련하지 못한채 관사나 남의 집 빈터, 양반집 행랑을 빌려 임시로 거처했다고 합니다.
벼슬을 하다가 지방을 귀양을 간 사람들은 한양 집을 팔고 갈 수 없었고, 주로 전세를 주고 떠났습니다. 그 전세가율은 50%에서 80%를 오르내렸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