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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몽구스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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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도감이란 것은 무엇을 했던 것인가요?

태종 때 개천도감을 설치했다고 하는데요.

개천도감은 무엇을 목적으로 생겨난 곳이며, 당시 어떤 역할을 했던 것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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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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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개천도감은 조선 태종 11년에 서울의 청계천을 다스리기 위하여 임시로 설치하였던 관아라고 합니다.

    조선 초기에 세 차례의 큰 홍수를 겪고 난 이듬해인 1408년(태종 8) 윤12월에 설치되어, 2개월여 동안 도성내의 동쪽으로 흐르는 큰 개천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개거도감(開渠都監)이라고 하여 성산군(星山君)이직(李稷)과 공조판서 박자청(朴子靑) 등을 제조(提調)로 삼아 전라도·경상도·충청도 3도의 역군을 모아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듬해 정월에 개천도감으로 바꾸고 제조를 더 두었으며, 감독관리도 증원시켰는데, 3도에서 모두 5만2800인이 동원되었습니다. 2월에 공사를 마치면서 이어서 도감은 행랑 짓는 일을 맡게 되었는데, 도감의 명칭을 행랑조성도감으로 바꾸면서 개천도감은 폐지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초기에 세 차례의 큰 홍수를 겪고 이듬해 1408년 태종 8년 윤12월에 설치되어 2개월여 동안 도성내의 동쪽으로 흐르는 큰 개천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개거도감라고 하여 성산군 이직과 공조판서 박자청 등을 제조로 삼아 전라도·경상도·충청도 3도의 역군을 모아 일을 시작하였고

    이듬해 개천도감으로 바꾸고 제조를 더 두었으며, 감독관리도 증원시켰는데, 3도에서 모두 5만2800인이 동원되었습었다.

    2월에 공사를 마치고 이어서 도감은 행랑 짓는 일을 맡게 되었는데, 도감의 명칭을 행랑조성도감으로 바뀌며 개천도감은 폐지 되었습니다.

    그 뒤로 개천도감은 다시 설치되지 않고 도성내의 개천을 치는 일은 도성수축도감에서 하다가, 1760년 영조 시절에 준천사가 설치되어 개천의 관리를 맡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