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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15

고대 이집트 파라오 중 가장 유명한 람세스2세는 어떤 인물이었나요?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이집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막강한 권력가였다고 묘사되던데, 고대 이집트 파라오 중 가장 유명한 람세스2세는 어떤 인물이었나요? 또한 그의 주요 업적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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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람세스 2세(영어: Ramses II, 기원전 1314년경 ~ 기원전 1224년, 혹은 기원전 1302년경 ~ 기원전 1212년)는 고대 이집트 제19왕조 제3대 파라오(재위: 기원전 1290년 ~ 기원전 1224년, 혹은 기원전 1279년 ~ 기원전 1212년)입니다.

    그의 치세동안 이집트는 리비아, 누비아, 팔레스타인까지 세력을 확장해 번영하였으며 람세 2세, 라메세스 2세라고도 표기되었습니다. 람세스란 이름은 라에 의해 태어났다는 의미를 가진 [라 메스 시스]의 그리스어 입니다.

    람세스2세의 생애는 생몰연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대체적으로 24세에 즉위하여 66년간 통치한뒤 90세에 죽은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사이 첫번째 왕비 네페르타리와 여러명의 왕비 및 측실과의 사이에서 현자(賢者)로써 명성이 높았던 카엠와세드, 후계자였던 메르에프타하을 시작으로 매우 많은 자식들을 낳았다고 전해지며 일부에서는 그들 대부분이 양자였고 왕의 아들이란 칭호를 하사받은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무엇보다 람세스 왕의 전용 활이라 불리는 커다란 강궁이 남아 있는데, 왕 이외에는 아무도 당기지 못했다는 일화가 있을정도로 뛰어난 전사였던 그가 많은 자식을 남기지 않았다고는 생각되지 않아, 역시 그들은 왕의 친자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치세 전반기에는 히타이트와 팔레스타인을 사이에 두고 세력을 다투었고 기원전 1286년 카데쉬 전투에서 직접 출정하여 히타이트 왕 무하탈리와 전투를 벌였습니다. 이집트는 카데쉬 전투에서 거짓정보에 속은 결과, 주력 군단이 괴멸당할정도의 고전을 면치 못했으나, 람세스 2세의 무용에 의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히타이트 세력을 팔레스타인에서 몰아내지는 못했으며 양쪽은 서로 상대를 물리치지 못하고, 장기간 전쟁을 계속하던 중 람세스 2세의 재위 21년째인 기원전 1269년에 이집트와 히타이트 사이에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휴전하였다고합니다. 람세스 2세는 히타이트 왕녀을 왕비로 맞이하였으며 이것은 세계사에서 최초의 평화조약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또한 카데쉬 전투에 대한 람세스 2세의 승리선전은 이집트군의 군사제도 개혁을 방해했기에 훗날 재앙의 불씨로 남게 되었다고합니다. 람세스 2세는 나일 제 1강을 넘어 누비아로 원정을 떠났고 람세스 2세는 전승 기념비을 많이 세웠고, 현재도 기념비의 상당수가 남아있는 파라오가 되었다고합니다. 누비아는 후에 이집트에 동화되어 본가 이집트의 쇠퇴를 구원하는 형태의 왕조을 세우게 됩니다.


    출처 인물세계사 자료인용


  • 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23.05.15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대 이집트 제 19왕조의 제 3대 왕으로 팔레스타인과의 오랜 싸움으로 화약을 맺고 시리아를 포기했으며 오리엔트적 전제군주로, 자신의 조상을 각지에 남기고 신전, 장례전 , 신문 등을 세웠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람세스 2세(영어: Ramses II, 기원전 1314년경 ~ 기원전 1224년, 혹은 기원전 1302년경 ~ 기원전 1212년)는 고대 이집트 제19왕조 제3대 파라오(재위: 기원전 1290년 ~ 기원전 1224년, 혹은 기원전 1279년 ~ 기원전 1212년)이다.

    그의 치세동안 이집트는 리비아, 누비아, 팔레스타인까지 세력을 확장해 번영하였다. 람세 2세, 라메세스 2세라고도 표기되었다. 람세스란 이름은 라에 의해 태어났다는 의미를 가진 [라 메스 시스]의 그리스어 음이다.

    생애

    생몰연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대체적으로 24세에 즉위하여 66년간 통치한뒤 90세에 죽은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사이 첫번째 왕비 네페르타리와 여러명의 왕비 및 측실과의 사이에서 현자(賢者)로써 명성이 높았던 카엠와세드, 후계자였던 메르에프타하을 시작으로 매우 많은 자식들을 낳았다고 전해진다. 일부에서는 그들 대부분이 양자이며 왕의 아들이란 칭호를 하사받은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무엇보다 람세스왕의 전용 활이라 불리는 커다란 강궁이 남아 있는데, 왕 이외에는 아무도 당기지 못했다는 일화가 있을정도로 뛰어난 전사였던 그가 많은 자식을 남기지 않았다고는 생각되지 않아, 역시 그들은 왕의 친자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치세 전반기에는 히타이트와 팔레스타인을 사이에 두고 세력을 다투었다. 기원전 1286년 카데쉬 전투에서 직접 출정하여 히타이트 왕 무하탈리와 전투를 벌였다. 이집트는 카데쉬 전투에서 거짓정보에 속은 결과, 주력 군단이 괴멸당할정도의 고전을 면치 못했으나, 람세스 2세의 무용에 의해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히타이트 세력을 팔레스타인에서 몰아내지는 못했다. 양쪽은 서로 상대를 물리치지 못하고, 장기간 전쟁을 계속하던 중 람세스 2세의 재위 21년째인 기원전 1269년에 이집트와 히타이트 사이에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휴전하였다. 람세스 2세는 히타이트 왕녀을 왕비로 맞이하였다. 이것은 세계사에서 최초의 평화조약이라 평가했다. 또한 카데쉬 전투에 대한 람세스 2세의 승리선전은 이집트군의 군사제도 개혁을 방해했기에 훗날 재앙의 불씨로 남게 되었다.

    람세스 2세는 또한 나일 제 1강을 넘어 누비아로 원정을 떠났다. 람세스 2세는 전승 기념비을 많이 세웠고, 현재도 기념비의 상당수가 남아있는 파라오가 되었다. 누비아는 후에 이집트에 동화되어 본가 이집트의 쇠퇴을 구원하는 형태의 왕조을 세우게 된다.


  • 안녕하세요. 엄재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람세스2세는 고대 이집트 제19왕조의 제3대 왕(재위 BC 1279~BC 1213) 입니다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강력한 파라오 중 한 명 입니다

    히타이트와 휴전을 맺어 50년 동안 평화를 유지했고

    아부심벨 신전, 카르나크 신전, 라메세움 등의 거대한 건축물을 이집트 전역에 건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