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정권말기 삼별초는 전부 몰살 당했나요?
무신정권시절의 무신정권의 군사조직이었전 삼별초는 최고권력자의 숙청에 동원되는 등 무시못할 정도의 세력이었지만 원종이 이를 해산하려고하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키는데 이 삼별초는 항쟁을 하면서 전부 살아남지 못했나요?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별초는 어떻게 보면 최씨 집권기시절에 더욱 강한 막부에 힘을 발휘하려고 만든 조직이지만
당시 몽고가 중원을 평정하고 세계를 뻣어나가 고려의 수도가 강화로 옴겨가고 한상황에서
그 큰 나라 몽고에 대항하여 40년이라는 항쟁을 하면서 우리민족의 상무정신 민족정신을 이어갈수있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훗날 최씨 정권이 무너지자 정부와 몽고 연합군과 3년 동안의 항쟁끝에 몰살 당하며 삼별초는 끝이납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록에 몰살이 됐는지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
삼별초의 난이 일어나자
원종은 서둘러 난의 진압과 왕정 복위를 위해 원나라에 원병을 요청했고 원에서도 이를 받아들여 군대를 파견합니다. 그래서 1271년 원나라군과 김방경이 이끄는 고려군이 여몽연합군을 결성하고 진도를 향해 진격해 들어갔습니다. 진도에 도착한 여몽연합군은 불창화포를 쏟아부었고 삼별초는 죽을 각오로 항전했지만 결국 패배해 진도가 함락되며 배중손은 전사하고 명목상으로 왕위에 올랐던 승화후 왕온마저 피살당합니다.
잔존한 세력은 김통정의 지휘하에 제주도로 피신하여 항전을 이어갔지만 1273년 여원연합군의 공격에 완전히 진압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별초가 강화도 에서 제주까지 그 힘을 잃고 도망하자 원나라 세조(世祖: 쿠빌라이) 또한 일본정벌의 기지로서 제주를 중요시해 1272년 8월 사신을 보내 제주 공략을 촉구하였고 이에 홍다구는 처음에는 김통정에게 회유공작을 폈으나 성과가 없자, 1273년(원종 14) 2월 김방경 · 흔도 · 홍다구로 이루어진 대규모의 연합군이 제주를 공격하였습니다. 이 때 연합군은 병선 160척, 수군 · 육군 1만 인(고려군 6천 인, 몽고군 2천 인, 한군 2천 인)이었는데 연합군의 대대적인 협공으로 삼별초의 수령 김통정은 70여 명의 휘하 부장과 함께 산 속으로 피신했지만 부장들은 연합군의 수색에 의해 거의 체포되어 홍다구의 손에 의해 처단되었습니다. 김통정은 자결한 시체로 발견되었으며, 남은 1,300여명도 포로가 되어서 전부 잡혔습니다. 이리하여 삼별초의 항쟁은 약 3년 만에 진압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삼별초는 고려시대 경찰및 전투의 임무를 수행한 부대의 명칭인데 무신집권기 최씨정권의 사병으로 존재하던 좌별초 우별초 신의군을 말하는데 최우 집권기에 치안을 목적으로 경찰 업무를하는 좌별초를 조직했고 그 수가 많아지자 좌별초와 우별초로 나누었으며 몽고로 잡혀갔다가 탈출한 자들로 편성된 신의군과 함께 삼별초라 하였는데 대몽 강화가 이루어지자 이에 반발하여 난을 일으켰으며 1273년 고려와 몽고연합군에 의하여 섬멸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