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도교식 제천의식을 관장하는 관청이었던 소격서는 정치경제적으로 딱히 중요한 역할도, 기능을 하는 곳도 아니었지만 정통 성리학으로 유교 정치를 추구했던 조광조의 눈에 이단인 도교의 잔재가 왕실에 남아있다는건 용납되기 어려웠고 중종 입장에서는 선왕들도 건드리지 않았던 전통을 굳이 자기 손으로 없애 는게 마뜩지 않은 일이었을뿐 아니라 왕의 권위가 하늘에서 온 것이라는 상징적 장소를 굳이 없애고 싶지 않았기에 조광조와 중종은 강하게 맞섰다고 합니다.
소격서는 도교의 초제를 거행하기 위해 설치한 관청입니다. 즉 신선과 별자리에 제사 의식을 담당하는 기관입니다. 소격서는 도교의 상징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성리학 관료들은 페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결국 1518년 조광조 등 사림들의 강력한 건의를 통해 혁파되었습니다. 하지만 기묘사화로 다시 설치되었다가 임진왜란 이후 완전히 폐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