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는 비극에 대한 회안과 왕으로서의 정당화를 동시에 드러냈습니다. 영조는 사도세자의 죽음 이후 직접 묘지문을 작성하며 자신의 심정을 담기도 했습니다. 그는 "진실로 아무 일이 없기를 바랐으나 9일째에 이르러 네가 죽었다는 망극한 비보를 들었노라"라고 적어 탄식과 아들의 죽음에 대한 회한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시호 "사도"를 내렸습니다. 그러나 영조가 묘지문에서 아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는 했지만 그의 행동과 기록을 보면 후회보다는 왕권 유지와 정치적 안정을 더 중요시햇던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