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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찬밀잠자리170
대찬밀잠자리170

처칠이 영국에서 영웅이지만 왜 인도에선 욕을 먹나요?

영국의 수상 처칠이 인도에서 나쁜짓을 많이했다고 하던데 처칠이 어떤행동을 했길래 재조명을 해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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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개의 답변이 있어요!
    • 굉장한비오리121
      굉장한비오리121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영국수상 윈스턴 처칠이 인도에 저지른 참혹한 홀로도모르 - 숨겨진 벵골 대기근의 실체(19금)

      "아직도 굶고 있는 간디(당시 비폭력 단식투쟁 중)가 안 죽었느냐?" - Winston Churchill, 영국 수상ㅣ1943년, 인도에 기근이 들자 마지막 영국인 인도 총독 Louis Mountbatten이 처칠에게 식량 원조를 요청하자 이에 답변한 말

      "나는 인도인들을 증오한다. 그들은 추잡한 종교를 가진 추잡한 족속들이다."- Winston Churchill, 영국 수상ㅣ1942년 9월 9일 Churchill이 인도의 외무장관 Leo Amery에게 했던 말을 그가 자신의 일기에 적은 내용 중

      "현 상황에서 그들은 여분의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인도의 현 생활수준에서 가장 작게 나빠지는 것은 인도인들이 서서히 굶어 죽는 것을 의미한다."- Winston Churchill, 영국 수상ㅣ1935년 인도인들에 대해 영국의 하원에서 했던 연설의 내용 중

      "인도 문제에서 처칠은 제정신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히틀러와 처칠의 사고방식 사이에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 당시 인도의 국무장관으로 영국의 국회의원, 장관, 총리를 역임한 정치가인 Leo Amery가 자신의 일기에 적은 내용 중

      1943년 12월 미국의 신문에 인도의 벵골 대기근으로 인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소년과 강아지가 굶어죽은 사진의 모습(왼쪽)과 벵골 대기근으로 인해 굶어죽기 직전의 인도인에게 부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물을 주고 있는 모습(오른쪽)

      "히틀러 만큼이나 처칠, 루스벨트도 비난받아야 한다." - Nicholson Baker,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 미국 소설가로 이스트먼 음악학교에 진학해 작곡을 공부했으나, 곧 전공을 바꿔 하버포드 대학에서 영문학으로 학위를 받았다. 다수의 소설을 썼으며, 2001년 미국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았다. 현재 미국의 유명한 소설가이자 반전평화주의자, The New Yorker의 기고가이다ㅣ2차대전 비판적 성찰작으로 논란을 일으킨 그의 논픽션 저서 '인간연기(Human Smoke)'의 내용 중

      "처칠의 벵골 홀로코스트는 2차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홀로코스트보다 규모가 더 큰 학살이다." - Gideon Polya, 태즈매니아 대학교를 다녔으며, 오스트레일리아 남부의 플린더스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MWC News의 정치관련 최고 편집장으로 있다ㅣ2010년 9월 13일에 올린 논설문의 내용 중

      "수백만명이 굶어죽은 아일랜드와 인도의 대기근을 수수방관한 영국의 처사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사성일, 인하대학교 국어국문학 학사를 나왔고 출판저널 기자를 지냈다. 현재 도서신문에서 출판 평론가로 있다ㅣ아마르티아 센이 저술한 <정체성과 폭력>의 출판에 2009년 12월 25일 '제국주의보다 더 위대한 세계화?'라는 제목으로 시사IN에 올린 출판평 글의 내용 중

      "기아는 일부 사람들이 충분한 식량을 갖지 못하면서 발생하는데, 이때 식량부족의 징후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 Amartya Kumar Sen, 캠브리지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영국 옥스포드대학교 교수, 미국 하버드대학교 교수, 영국 캠프리지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노벨 경제학상으로 '기아와 빈곤 문제에 초점을 맞춘 경제학의 틀 확립'이라는 분야로 수상했고 현재 하버드대학교 경제학 교수로 있다. 인도 벵골지역에 태어나서 10세 때 목격한 1943년의 '벵골 대기근'은 그의 학문에 큰 영향을 미쳐 수백만의 죽음을 지켜본 그는 평생 빈곤과 기아라는 주제에 천착했고, '후생(厚生)경제학'의 최고 대가로 자리를 잡았다. 기아의 원인이 식량 부족이 아니라 잘못된 분배라는 사실을 이론적으로 증명한 최초의 학자이다ㅣ그의 대표 저서인 <Poverty and Famines : An Essay on Entitlement and Deprivation(빈곤과 기아 : 권리부여와 박탈에 관하여)>의 내용 중

      "1943년 인도 벵골 지역의 대기근으로 300만 명이 아사할 때 그 원인은 식량이 없어서가 아니라 당시 영국의 식민지 농업정책의 실패 때문이었다. 북한의 현재 상황도 벵골 지역의 대기근 당시와 유사하게 분석될 수 있다." - 존 박, 미국 의회가 국제평화와 갈등해결을 위해 만든 초당파적인 독립연구기관으로 미국 의회의 자금지원을 받는 미국 평화연구소(USIP)의 선임연구원ㅣ2009년 12월 22일 뉴데일리에 '화폐개혁으로 북 식량난 가능성'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기사의 내용 중

      "연합국의 포격으로 희생된 사람들, 파괴된 건물들, 노르망디 상륙 이후 연합군 군인들이 자행한 각종 절도, 약탈, 성폭행 등이 대거 발생했는데 지금까지 역사가들이 제대로 연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연합군 포격을 받은 브레스트나 캉과 같은 도시도 마찬가지이다. 전쟁이 동반하는 폭력은 불가항력적인 사건이라며 간과하거나, 전쟁 시기였고 또 '폭로'하기에는 너무 어두운 과거이며, 창피한 사건이라고 하여 묻어버려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전쟁기의 어두운 분야에 대한 연구에 부정적인 사람들의 주장에 동의한다면, 역사가들은 언제나 승자의 기록만 유지, 평가하고 그것에만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라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 앙리 루소, 국립과학연구소(CNRS) 산하의 현대사연구소(IHTP)가 창립될 때 창립 회원으로 참가했으며, 같은 연구소에서 소장을 역임했고, 2005년까지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하버드대학을 비롯하여, 파리정치대학, 뉴욕대학 등에서 강의했다. 2000년 6월 ‘콜레주드프랑스’를 제외한 프랑스의 모든 고등교육기관에서 강의할 수 있는 자격증(habilitation)을 획득했고, 2001년 9월부터 파리 10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루소의 전공은 현대사 그 중에서도 특히 제2차 세계대전사이다. 〈Vingtième siècle. Revue d'histoire〉, 〈Société et Droit〉, 〈Les Cahiers du judaïsme〉, 〈Passoto e Predente〉(이탈리아 학술지)의 편집위원, 프라하 프랑스연구소, 부다페스트 역사연구소 등 국제 학계에서도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작품 <비시 신드롬>은 프랑스 사학계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고, 로버트 팩스턴의 <비시 프랑스>라는 저서를 통해 프랑스 비시 정권이 나치즘에 자발적으로 협력했다는 주장의 테제가 옳았음을 증명했다ㅣ그의 저서 <비시 신드롬> p564~p565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처칠은 인도 독립에 대한 반대와 대영제국에 대한 지지를 밝힌 걸로 유명했습니다. 인도의 완전한 독립을 거부했으며 1943년 벵골 기근으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식량 부족으로 사망하게 한 책임이 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도에선 처칠이 비판의 대상이 됩니다.

    •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43년 인도의 벵골 기근. 전 세계에 평화를 촉구하고 영국에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었던 처칠이 최대 7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벵골 기근의 배후에 있다는 주장이 뒤늦게 제기되었습니다.

      인도 출신의 미국 작가 마두스리 무커지는 2010년 출간한 저서 '처칠의 비밀 전쟁'에서 이 같은 주장을 펼쳤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2년 일본이 미얀마를 점령하자 처칠은 일본이 미얀마를 통해 인도로 들어올 것을 우려해 인도에 대규모 쌀 공습을 명령해 기근을 일으켰습니다. 영국은 회의록과 같은 기록을 파기했지만 처칠의 말은 주변 사람들의 일기에 남아 있습니다.

      무커지는 자신의 책에서 "처칠은 비서에게 '폭격을 당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등 인도인에 대해 험한 말을 많이 했다"고 주장합니다. 인도 총독이 식량 지원을 요청하자 처칠은 "왜 (당시 비폭력 단식 투쟁 중이던) 간디는 아직 죽지 않았느냐?"고 비꼬았습니다. 그는 인도 외무장관 리오 에머리에게 "나는 인도인이 싫다. 그들은 이상한 종교를 가진 이상한 민족입니다."라고 리오 에머리 인도 외무장관에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 1943년 인도 벵골에는 인도 역사상 최악의 기근이 발생해 700만명이 아사했습니다.

      얼마 후 당시 인도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군의 비밀문서가 발견됐고, 이 문서에는 영국군의 쌀 수탈 정책이 대기근을 불러왔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쌀 수탈 정책을 지시한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바로 처칠이었습니다.

      1942년 세계 2차 대전 당시 미얀마에서 일본과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영국은 일본에게 미얀마를 뺏기고 말았습니다. 이에 처칠은 일본이 쳐들어와도 보급품의 부족으로 내륙까지 진입할 수 없도록 묘책을 내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쌀 수탈 정책이었던 것입니다.

      이후 영국은 해당 사실을 담은 공식 회의록이나 보고서를 모두 폐기했습니다. 이로써 벵골 대기근은 자연재해로 인한 참사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2010년 역사학자 무케르지는 저서 '처칠의 비밀전쟁'을 통해 이 사실을 모두 폭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