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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가오리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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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이후 나온 신민족주의 사학은 어떤 내용인가요?

민족주의 사학이 일제에 탄압을 받고 침체하게 되자

1940년대 이후로 신민족주의 사학이 나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신민족주의 사학은 기존의 민족주의 사학과 비교했을 때 어떤 차이점, 그리고 공통점이 있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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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해방 이후 민족주의사학의 역할 변화에 따라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한국 역사학계의 한 경향.

    이 부류에 속하는 학자로는 안재홍(安在鴻)·손진태(孫晉泰)·이인영(李仁榮)·조윤제(趙潤濟)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민족주의사학이 일제의 탄압으로 침체되면서 1940년대부터 새로운 방향 모색을 시도했으며, 해방 직후 본격적으로 역사학계에 자리를 잡았다.

    *연원 및 변천

    신민족주의라는 용어는 1945년 안재홍이 『신민족주의(新民族主義)와 신민주주의(新民主主義)』라는 책을 내면서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안재홍의 신민족주의 정치사상은 이미 1920∼1930년대부터 구상되었던 것으로, 해방 후 구체화되었다. 안재홍은 권리와 봉사의 균등을 조건으로 삼는 신민주주의의 토대 위에 널리 인류와 공존한다는 만민공생(萬民共生)에 입각한 민족주의를 주장해 국수적 민족주의에서 탈피하였다.

    안재홍의 구상을 역사학 방면에 구체적으로 적용해 신민족주의사학으로 이론화시킨 이는 손진태였다. 손진태는 일제시기에 민속학 연구를 통해 민중을 발견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해방 후에는 『조선민족사개론(朝鮮民族史槪論)』·『국사대요(國史大要)』 등의 책을 쓰면서 신민족주의 역사학을 정립하였다.

    손진태는 대내적으로는 계급투쟁이 일소되고 친화와 단결이 이루어진 평등한 민주국가를, 대외적으로는 국제간 친선에 기여하는 민족 자주국가를 건설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를 통해 민족 전체의 균등한 행복과 민족 간 친선을 이룩하는 것이 신민족주의의 과제라고 규정하였다.

    그리하여 한국의 역사에서 보인 민족투쟁·계급투쟁·정치문화 등을 민족적 입지에서 구명하고자 하였다. 또한, 역사연구를 통해 민족사의 나아갈 방향과 세계 민족 친선의 참다운 길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인영도 역시 신민족주의 이론을 국제관계 연구에 응용해 한국사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인영은 대외관계를 연구하면서 우리 민족의 현실에 자극을 받아 새로운 과학적 학문을 모색하였다. 해방 후에는 여러 사론과 『국사요론(國史要論)』을 통해 신민족주의사학의 기반을 다졌다.

    이인영은 우리 민족이 유지되어 온 역사적 현실을 파악하는 것이 역사학에서 중요하다고 하였다. 이를 위해서 역사를 서술하는 사람은 철저한 현대의식(現代意識)과 민족적 세계관을 체득해야 한다고 하였다. 새로운 역사학의 과제는 현실적·민족적 입장과 세계사적 관점에서 역사적 현실에 일관하는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이라고 하였다.

    한편, 조윤제는 국문학을 해석하면서 신민족주의를 받아들였다. 그 외 신진학자로 김성칠(金聖七)과 오장환(吳璋煥)이 문화주의 역사학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국수적이고 침략적인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새로운 민족문화의 형성과 세계 문화 건설을 주장해 신민족주의사학의 성향을 보였다.

    신민족주의사학은 1920∼1930년대의 국수적 민족주의와는 달리 민족의 초계급적 측면과 보편주의적 해석에 입각한 역사 인식을 기초로, 민족의 형성과 발전을 역사 서술의 중심 개념으로 삼았다. 그리고 민족사를 서술할 때에는 민중의 문제와 세계사와의 관련성을 중시하였다.

    그런데 한국전쟁 당시 안재홍·손진태·이인영 등이 납북됨에 따라 이 역사학 계열의 맥이 끊어지고 말았다. 남한에서 신민족주의사학의 유풍은 해방 직후 손진태·이인영의 지도를 받았던 학자들에 의해 일부 간직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민족주의사학 [新民族主義史學]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민족주의 사학은 한국 문화의 고유성을 발견하고 한국사의 독자성과 주체성을 강조함으로써 식민 사관을 비판하는 데 크게 기여했는데 민족주의사학이라면 1910년대 이후 박은식(朴殷植)·신채호(申采浩) 등과 1930년대 이후의 정인보(鄭寅普)·안재홍(安在鴻)·문일평(文一平) 등으로 이어지는 갈래를 의미합니다. 이들 모두는 일원론적 유심론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한말의 계몽주의적 역사서술은 비록 근대적 체재와 서술방식을 갖추었으나,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왜곡된 한국사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써 민족적 측면에 많은 한계를 드러내었는데 1940년대 이후 민족주의 사학은 안재홍과 손진태 등에 의해 민중성과 개방성을 강조하면서 세계사 속의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신민족주의 사학으로 발전해 갔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30년대 일제 말기부터 성숙되어온 민족주의사학과 마르크스주의 사학, 실증사학 등을 바탕으로 하여 1945년 8.15해방이후 혼란스런 정국을 계급을 초월한 민족통일국가로 건설한다는 목표 아래 안재홍, 손진태 등에 의해 본격적으로 제창된 민족주의사학으로 당시 해방 이후 한국은 남북한 간, 미국과 소련의 간섭이 여전한 상태였고 이로 인해 좌우익, 계급 간의 갈등 등으로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혼란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 대내적으로 단결을 이끌어 내기 위해 계급, 이념 간 대립을 넘어 국민적 사상을 하나로 통합해 하나의 한민족 공동체를 이뤄야해 한다는 것으로

    국내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성취해 민족을 구성하는 여러 사회계층 간의 대립과 반목을 해소하고 대외적으로 타민족에 대해 자주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배타성을 완화하여 국제적 민족주의로 전환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신민족주의를 창도한 대표적 인사로 안재홍, 손진태, 이인영 등이며 이들은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정책에 대한 대응논리로 민족정기, 조선심, 얼을 강조, 해방 후 이들은 극좌 계급노선에 대응하는 논리로 민중 개념을 내세웠으며 안재홍은 초계급적 통합민족국가를 신민족주의의 목표로 내세워 새로운 국가 건설에 대한 이상과 구체안을 체계화해 당시 민족주의 운동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합니다.

    손진태는 정치사상으로서의 의미에서 그친 안재홍의 사상에 비해 보다 이상주의적인 이론적 체계를 더하여 당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계급 간의 화해를 전제로 한 계급 평등 실현을 강조, 안확은 조선문학사, 조선문명사를 저술하고 선진 서구문물만 최상으로 여기던 당시 민족 스스로의 역량에 의한 개화와 선진문명을 섭취하려는 사회진화론, 문명개화론을 주장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민족주의사학은 기존의 민족주의 사학과 비교했을 때 계급과 민족의 문제를 직접 역사 속에서 다루면서 민족의 역사를 보편적이고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여 민족주의사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신민족주의

    일제치하 민족주의 사학을 계승하여,

    1940년대~1950년대를 배경으로 통일 민족국가의 건설을 모색하는 방향에서 등장하였습니다.

    당시 시대적 배경은 광복이후 혼란기 및 우익과 좌익이 서로 대립하고, 미.소의 신탁통치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던때, 자주적 민족국가의 수립과 민족적 자유와 평등 실현을 목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재평가하고 민족사를 체계화 하고자 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좌우 양 극단을 배제하고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념을 서로 조합하여,

    민족적 단합을 바탕으로 한 주체성은 견지하되, 대외 배타성은 지양하여, 국제 협력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민족 국가의 건설을 목적으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관점을 바탕으로 한 가치 판단을 지나치게 중시함으로써,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2.신민족주의사학의 인물. 업적

    -대표적으로 손진태.안재홍.이인영.홍이섭등이 문헌 고증사학을 바탕으로 민족주의 사학을 새롭게

    계승발전 시키려는 이론으로 전개하였습니다.

    1)안재홍

    1945년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에서 만민공생을 바탕으로 한 통일 민족 국가 건설을 목적으로

    중도우파적 신민족주의사학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였습니다.

    신간회 활동에도 참여하였으며, 신민족주의적 단결을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안재홍의 신민족주의사학은 1930년대 "조선학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실천적 경험이 축적되면서 나타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서:조선상고사감- 고조선의 발전 모습을 체계화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민족주의라는 용어는 1945년 안재홍이 『신민족주의(新民族主義)와 신민주주의(新民主主義)』라는 책을 내면서 본격적으로 제기되었습니다.


    안재홍의 신민족주의 정치사상은 이미 1920∼1930년대부터 구상되었던 것으로, 해방 후 구체화되었습니다. 안재홍은 권리와 봉사의 균등을 조건으로 삼는 신민주주의의 토대 위에 널리 인류와 공존한다는 만민공생(萬民共生)에 입각한 민족주의를 주장해 국수적 민족주의에서 탈피하였습니다.


    안재홍의 구상을 역사학 방면에 구체적으로 적용해 신민족주의사학으로 이론화시킨 이는 손진태였습니다. 손진태는 일제시기에 민속학 연구를 통해 민중을 발견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 후에는 『조선민족사개론(朝鮮民族史槪論)』·『국사대요(國史大要)』 등의 책을 쓰면서 신민족주의 역사학을 정립하였습니다.


    손진태는 대내적으로는 계급투쟁이 일소되고 친화와 단결이 이루어진 평등한 민주국가를, 대외적으로는 국제간 친선에 기여하는 민족 자주국가를 건설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를 통해 민족 전체의 균등한 행복과 민족 간 친선을 이룩하는 것이 신민족주의의 과제라고 규정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한국의 역사에서 보인 민족투쟁·계급투쟁·정치문화 등을 민족적 입지에서 구명하고자 하였습니다. 또한, 역사연구를 통해 민족사의 나아갈 방향과 세계 민족 친선의 참다운 길을 제시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인영도 역시 신민족주의 이론을 국제관계 연구에 응용해 한국사를 파악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인영은 대외관계를 연구하면서 우리 민족의 현실에 자극을 받아 새로운 과학적 학문을 모색하였습니다. 해방 후에는 여러 사론과 『국사요론(國史要論)』을 통해 신민족주의사학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이인영은 우리 민족이 유지되어 온 역사적 현실을 파악하는 것이 역사학에서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서 역사를 서술하는 사람은 철저한 현대의식(現代意識)과 민족적 세계관을 체득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새로운 역사학의 과제는 현실적·민족적 입장과 세계사적 관점에서 역사적 현실에 일관하는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한편, 조윤제는 국문학을 해석하면서 신민족주의를 받아들였습니다. 그 외 신진학자로 김성칠(金聖七)과 오장환(吳璋煥)이 문화주의 역사학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국수적이고 침략적인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새로운 민족문화의 형성과 세계 문화 건설을 주장해 신민족주의사학의 성향을 보였습니다.


    신민족주의사학은 1920∼1930년대의 국수적 민족주의와는 달리 민족의 초계급적 측면과 보편주의적 해석에 입각한 역사 인식을 기초로, 민족의 형성과 발전을 역사 서술의 중심 개념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민족사를 서술할 때에는 민중의 문제와 세계사와의 관련성을 중시하였습니다.


    그런데 한국전쟁 당시 안재홍·손진태·이인영 등이 납북됨에 따라 이 역사학 계열의 맥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남한에서 신민족주의사학의 유풍은 해방 직후 손진태·이인영의 지도를 받았던 학자들에 의해 일부 간직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