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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무왕과 문왕의 외교 관계 차이점에 대해 질문

발해의 무왕은 신라,당 적대 했다고 알고 있는데 발해의 문왕은 당과 화친을 맺은것을 보니 적대시하지 않고 친하게 지냈다고 볼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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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든든한소쩍새224
    든든한소쩍새224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발해와 신라가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계기는 무왕 仁安 14년(732)에 있었던 당나라 공격에 신라가 개입한 사건에서 비롯한다.200) 발해와 당은 발해 건국과정에서부터 대립적이었다. 즉 당은 李楷固를 시켜 요하를 건너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던 대조영을 공격하였다가 天門嶺에서 패배한 적도 있었다. 이러한 양국관계는 발해의 고구려 영토 회복정책과 신라와 발해의 대립관계가 심화되면서 더욱 노골화되었다.


    신라와 발해가 대립하였던 또 다른 시기는 발해와 일본이 신라를 협공하려 했던 발해 3대 문왕(大欽茂) 때였다. 문왕은 무왕 대무예의 둘째 아들로서 737년에 왕위에 올라 무왕의 대내외정책을 이어받아 보다 적극적으로 발해의 정치제도를 정비하여 나갔다. 그 역시 왕위에 오르자 연호를 大興으로 고쳐 썼고, 수도를 敦化에서 黑龍江省 寧安縣의 東京城으로 옮겨 내정의 개혁을 꾀하였다. 이어 774년에는 연호를 대흥에서 寶曆으로 고쳤다가 말년에 다시 대흥으로 바꾸는 등 몇 차례에 걸쳐 정치쇄신을 위하여 힘썼던 것 같으며, 특히 그의 말년(785∼793)에 다시 혼춘의 東京 龍原府로 수도를 옮기는 등 진통을 겪기도 하였다.

    출처:우리역사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