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의 시작인 노구교 사건은 무엇인가요?
일본이 대륙침략을 위해 중국과 전쟁을 한 중일전쟁은 노구교 사건이 계기라고 하던데요.
노구교라는 말을 처음 들어봤는데, 노구교사건은 어떤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37년 일본·중국 양국 군대가 노구교에서 충돌하여 중·일전쟁의 발단이 된 사건.
노구교는 북경 남서쪽 교외에 있는 영정강(永定河)을 가로지르는 노구교 왼편의 소도시로, 송철원(宋哲元)이 지휘하는 중국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37년 7월 7일, 북경 교외 풍대(豊台)에 주둔한 일본군이 노구교 부근에서 야간연습을 실시하던 중, 몇 발의 총소리가 나고 병사 1명이 행방불명되었다. 사실 그 병사는 용변중이었고 20분 후 대열에 복귀했으나, 일본군은 중국군 측으로부터 사격을 받았다는 구실로 주력부대를 출동시켜, 다음날 새벽 노구교를 점령했다. 7월 11일 양 측은 중국의 양보로 현지협정을 맺어 사건이 일단 해결된 듯했으나, 화북침략을 노리던 일본정부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면서 관동군 및 본토의 3개사단을 증파, 7월 28일 북경·천진에 대해 총공격을 개시했다. 이로써 노구교사건은 전면전으로 확대되어 중·일전쟁으로 돌입했다. 중국 측에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제2차 국공합작이 이루어지고 항일기운이 높아졌다.[네이버 지식백과] 노구교사건 [盧溝橋事件] (한국근현대사사전, 2005. 9. 10., 한국사사전편찬회)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루거우차오 사건(노구교 사건)은 1937년 7월 7일에 베이핑(현 베이징 시) 서남쪽 방향 루거우차오(루거우 다리, 중국어 간체자: 卢沟桥, 정체자: 盧溝橋, 병음: Lúgōuqiáo)에서 일본군의 자작극으로 벌어진 발포 사건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루거우차오 사건(노구교 사건)은 중일전쟁의 발단이 되었다고 알려져있는데, 다음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노구교 사건. 중일전쟁의 발단이 되었다. 중국에서는 7.7 사변(七七事变)이라 부른다. 이 사건의 배경이 된 '루거우차오(盧溝橋, 卢沟桥, Lúgōu Qiáo)'는 베이징시 펑타이구에 있는 다리의 이름으로, 한국 한자음으로 읽어 '노구교'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양에선 마르코 폴로가 이 다리를 언급했던 탓에 '마르코 폴로 다리'라고도 부른다.
-출처: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