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와 청나라 시절 후궁 제도는 규모 자체가 압도적으로 컸기 때문에 후궁 암투가 상대적으로 극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명나라는 100명 이상 청나라는 초기에 30~40명 시작으로 전성기에는 수백 명까지 후궁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후궁 수가 많을수록 경쟁이 심화되고 권력이나 안전, 지위, 생존문제로 경쟁적으로 암투가 벌어졌습니다. 실제 기록에는 명나라 영락제, 선덕제 당시 궁중 암투에 대한 기록이 묘사되어 있고 청나라 현종 때 후비들 간 보이지 않는 경쟁을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선은 정식 후궁은 대부분 3~10명 이내이기 때문에 세력이나 경쟁이 매우 제한적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