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학문

역사

넉넉한키위191
넉넉한키위191

서울의 금남시장은 어떤 배경을 가진 시장인가요?

서울에 있는 금남시장은 조선시대에도 있던 시장이라고 들었습니다.

단순히 뜻을 보게되면 남자의 출입을 금한다는 뜻인데 정확히 조선시대에 어떤 배경을 가진 시장이었는지 궁금합니다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2개의 답변이 있어요!
전문가 답변 평가답변의 별점을 선택하여 평가를 해주세요. 전문가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국전쟁 이전부터 금호동에 터를 잡아 지금까지 이어져 온 시장이라고 합니다.

    금호동 일대가 재개발로 많이 변했지만, 금남시장과 그 주변 풍경은 여전히 90년대 중후반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금호동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70여 년 전통의 금남시장은 전형적인 골목형 시장으로 옛 맛과 정을 느낄 수 있는 친서민적인 시장이라고 합니다.

    금낭시장은 해방 후 1949년 백범 김구 선생은 금남시장 부근에 160호 규모의 주택단지와 백범 학원을 개원했는데, 그곳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장터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금남시장 앞 삼거리에 김구 선생님의 기념비가 있다. 전형적인 골목형 시장으로 독서당로를 따라 들어선 노점들과 좁은 골목 사이사이 점포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2005년부터 상인회를 중심으로 아케이드 설치, 조명등 교체와 같은 시설 현대화 사업을 실시하여 고객들에게 보다 쾌적한 쇼핑환경을 제공하고 있입니다. 금호동의 랜드마크이며 현대식 마트에서는 찾을 수 없는 맛과 정을 느낄 수 있는 친서민적인 시장이며 지하철 3호선 금호역 1번 출구에서 3분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30년대 초 이곳은 한강변 모래밭이었으므로 강 건너편의 용산 쪽 지명을 따라 용답리라 불렸으나 1930년대 중반 뚝섬 유원지가 개발되면서 강변도로가 생기고, 1940년대 초 경마장이 들어서며 점차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 들어 강남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데 이때 새로운 명칭이 필요했는데 여러 후보 중 여성스러운 느낌을 주는 금남이 선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