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이후 광해군은 창덕궁을 시작으로 궁궐을 복원했습니다. 그리고도 왕기가 서린 땅인 경희궁과 인경궁을 더 지었습니다. 그러나 법궁이 경복궁을 복원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명나라 풍수사 시문룡이 풍수가 좋지 않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국가 재정이 부족하여 경복궁을 복원하지 않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경복궁은 조선의 통치와 정치가 이루어지는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광해군은 명나라의 풍수사 시문룡에게 경복궁을 보여주었으나 복원하지 않았는데 이는 풍수가 좋지 않다는 의견과 임진 왜란 후의 국가 제정궁핍으로 인한 비용 문제 때문이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