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정사에 따르면 제갈량 사후 위연은 북벌을 계속 주장하나 양의가 군 철수를 주장하면서 지휘권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위연은 자오곡으로 도주 계획을 세우나 마대에게 역적으로 낙인 찍혀 참수당합니다. 위연은 실질적 반역 의도는 없었으며, 권력 투쟁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평가합니다.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은 위연이 반골의 상으로 미리 예언을 했다고 하나 정사에서는 용맹하고 공적을 인정하였으며, 반란은 제갈량 사후 양의와 권력 다툼 과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평가합니다